정부가 25일 발표한 내년도 예산을 보면 2013년에 균형재정을 달성한다는 목표에서 한발 물러섰다.
정부는 '실질적으로 균형재정 기조를 유지'한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1년 전에 꼭 집어 '균형재정'이란 표현을 쓰면서 2천억 흑자전환 계획을 내세웠던 것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더딘 상황에서 균형재정을 고집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균형재정의 범위에서 경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정부의 재정정책을 비판만 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재정수지 흑자전환 시기 1년 뒤로 미뤄져
정부는 내년에 관리재정수지가 4조8천억원 적자로, 국내총생산(GDP)의 -0.3%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다시 사회보장성기금(국민ㆍ사학ㆍ고용ㆍ산재)의 수지를 제외한 정부의 재정수지다. 통상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판단하는 지표로 쓰인다.
정부는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어 내년에 '엄격한 의미'의 균형재정 목표를 고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사전적 의미의 균형재정은 회계 연도의 세입과 세출이 균형을 이루어 적자가 없는 재정상태를 뜻한다.
경기에 적정하게 대응하면서도 적자 규모가 균형재정 기조의 범위에 들도록 내년 예산을 편성했다는 것이 정부의 해명이다. 그러면서 GDP 대비 0.3% 이내의 적자는 유럽연합(EU)에서 균형재정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내년에 실질적 균형을 이룬 뒤 2014년 이후부터 흑자규모가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이번에 발표한 '2012~201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2014년과 2015년 관리재정수지는 GDP 대비 0.1% 흑자를 기록하고서 2016년엔 0.5%로 확대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내년 33.2%, 2014년 31.4%로 계속 내려간다. 2015년엔 29.9%로 30% 미만으로 떨어진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예년보다 세수 등 재정여건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며 "이런 맥락에서 내년도 예산안은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경제활력과 민생안정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편성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1년 전과 사뭇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글로벌 재정위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며 "임기가 끝나는 201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정부는 한달 뒤 2011~201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면서 '2013년에 흑자 전환, 2014년 이후 소폭 흑자기조 유지'란 목표를 내세우며 2013년 균형재정 달성을 공식화했다.
구체적으로 2013년에 관리대상수지가 2천억원 흑자를 기록, GDP 대비로 +0.0%가 될 것이라고 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4년에 29.6%로 30% 미만으로 내려갈 것으로 봤다.
당시 정부의 기존 입장은 '2013~2014년 균형재정 목표 달성'이었다. 관리대상수지는 2014년에야 흑자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균형재정 달성시기를 2013년으로 못박고, 흑자전환 시기를 1년 앞당긴 것이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정부의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지적에도 정부는 이후 줄곧 재정건전성과 균형재정을 되뇌었다.
하지만 1년 후인 이날 '균형재정'이란 표현을 '균형재정 기조'로 바꾸면서 엄격한 의미의 균형재정 달성 연도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30% 미만으로 떨어지는 연도를 각각 1년 늦췄다.
◇"경기 대응 위해 균형재정 범위 내 적자 불가피"
정부의 태도 변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적지 않다. 경기가 1년 전보다 악화해 정부 수입이 줄고, 경기 대응을 위해 지출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세입 예산안을 짤 때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이 4.5%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최근 민간ㆍ국책 경제연구기관의 수정 전망을 보면 경제성장률이 2% 중반을 기록할 것이란 예측이 대세다. 내년엔 올해보다 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되나 성장률 전망치는 하향 조정되고 있다.
정부도 이같은 성장률 하향 조정을 의식해 예산안을 낼 때 총수입을 2011~2015년 계획보다 3조원 낮게 잡았다.
정치권에선 경기 둔화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라며 추가경정 예산 편성을 줄기차게 주장해 지출 면에서 증가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정치권의 추경 요구에 재정투자 보강대책을 내놓으면서 이번 예산안에선 2011~2015년 계획보다 지출 증가율을 0.2%포인트 올렸다.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국민에 돌아가는 수혜를 늘리고자 이차보전이란 카드도 썼다. 재정에서 돈을 지원하기보다 국민이 민간에서 대출을 받으면 정부가 정책금리와 시중금리간 이자 차이를 보전해주는 방식이 이차보전이다.
내년에 이차보전으로 지원한 지출을 융자로 환산한 6조7천억원을 고려하면 실제 지출증가율은 5.3%에서 7.3%로 2.0%로 늘어난다.
김동연 제2차관은 "중립적인 것보다 조금 더 나갔다"며 "총지출을 실질적으로 7.3%로 늘렸기 때문에 '팽창', '확대'라고 하긴 어렵지만 중립보다 경기에 적극 대응했다"고 이번 예산의 성격을 규정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태환 수석연구원은 "유럽위기가 재정위기에서 온 것이기에 재정을 급작스럽게 늘리기보다 장기화할 경기침체에 대비해 체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GDP 대비 0.3% 적자는 큰 적자가 아니다. 균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내년에 정부 예상보다 적자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우선 내년에 과다하게 잡은 세외수입을 실제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서다. 정부는 내년 세외수입을 37조4천억원으로 올해보다 9조1천억원(32.2%) 많게 편성했다.
이 중 정부가 보유한 유가증권 매각대금이 많이 늘어난다. 기업은행, 산업은행, 인천공항 등의 주식매각대금이 8조1천억원이다. 올해 1조9천억원의 4배가 넘는다.
정부는 그동안 이들 지분을 팔겠다며 세입예산에 넣곤 했지만 시장 상황과 공기업 민영화 반대 여론으로 여태껏 한 주도 팔지 못했다. 내년 차기 정권에서도 이들 지분을 팔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기업은행 주식 매각 대금을 연례적으로 계상하는 것을 두고 "수납여부가 불확실한 세입항목에 과도한 규모의 예산을 계상하는 것은 예산상 적자규모를 실제보다 과소하게 산출함으로써 국회 예산심의 시 재정운용방향의 정립에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내년 성장률을 4.0%로 전망한 것이 '낙관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세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경제성장이다.
자칫 장밋빛 성장을 전제로 세수를 짰다가 계획보다 세금이 덜 걷힐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9년이 그랬고 올해도 예산보다 세금이 덜 걷힐 전망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송원근 선임연구위원은 "내년도 세입은 경제여건이 결정하는데 성장전망이 조금 낙관적"이라며 "4% 성장보다는 좀 더 보수적으로 잡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