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주요 은행들이 조세회피지역에 서류상의 자회사들을 무더기로 설립, 운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국민 세금으로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들이 합법을 가장해 탈세를 일삼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4일 네덜란드 경제지 `피난시엘레 다그블라트' 등에 따르면 ING, ABN 암로, 라보방크 등 주요 은행들은 케이맨제도, 버뮤다, 모리셔스 등에 수많은 자회사를 두고 있다.
조세회피지역에 있는 기업들은 이름뿐이고 실체가 없는 이른바 `서류상의 기업(paper company)' 들이다. 흔히 세금 포탈과 관련 있다.
이 자회사들은 연례 실적 보고서 등 은행들의 공식 사업 보고서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상공회의소에 제출된 주주 현황 등의 자료에는 나온다.
ABN암로의 경우 2008년에 8개 조세회피지역에 55개를 거느렸으며 ING는 2009년 71개에 달했다. 지금은 각각 33개와 27개로 줄었다.
이는 2009년 세계 금융위기로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거액의 구제금융을 받고 경영난으로 국제 부문이 위축되자 사업구조를 전략적으로 재조정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자회사 설치가 "회계상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것이지 세무상의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ING 측은 주로 사모펀드(PEF)와 부유한 개인 고객들을 위한 상품 때문에 조세회피지역에 자회사를 둔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사모펀드의 경우 투자자의 거주국, 부동산의 소재지, 펀드의 서류상 설립지역이 다르게 처리할 경우 세금이 3분의 1이나 줄어든다.
은행들은 이런 방식으로 운영해도 네덜란드 국세청의 세수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중요한 사항이라면 공식 보고서에 넣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불법도 아니고 별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인 `네덜란드 조세 정의(TJN)'의 알베르트 홀란더 회장은 이런 주장에 회의적이다.
홀란더 회장은 은행들이 이른바 우편함만 현지에 두는 식의 `가공의 회사(Letterbox companies)'들을 설치해 네덜란드 정부의 과세를 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설령 이런 방식이 합법적이라고는 해도 "사회적으로 바람직스럽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피난시엘레 다그블라트는 앞서 이른바 남유럽 국가의 거대기업 가운데 60%가 조세회피를 위해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네덜란드에 지주회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한 바 있다.
기업들의 `절세'는 주로 이른바 `이전(移轉) 가격 조작(transfer pricing)'을 통해 이뤄진다.
이전 가격 조작은 다국적 기업들이 세율이 높은 나라의 법인에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사업 비용을 떠넘기고 이익은 세율이 낮은 곳에 설립한 법인에 몰아 줘 세금을 줄이는 방법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케이맨제도, 아일랜드 등은 이런 식의 편법적 관행에 우호적인 나라에 속해 외국 기업들의 법인 설립이 활발하다.
이들 나라는 자국에 법인을 설립한 외국기업들에 유입되는 이자와 로열티, 배당금 등에 매우 낮은 또는 무시해도 좋은 수준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