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가 부가가치세율을 올리는 등 조세정책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재정학회는 `조세관련학회 연합학술대회'를 하루 앞둔 8일 조세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부가세를 올려도 취약계층 보조금 등을 활용하면 저소득층 부담 증가, 물가 압박 등 부작용을 없앨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세수 확대를 위해 이른바 `버핏세' 등 소득세 최고구간을 추가로 신설하고 소득공제 수준을 동결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소액주주 상장주식과 파생금융상품 양도차익 등 금융소득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법인세율은 국제 조세경쟁으로 더욱 낮아질 것으로 보여 실효세율은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목 신설이나 세율의 대폭 인상은 민간 투자와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으므로 반대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차기정부 부가가치세율 15%까지 올려야
김승래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는 차기 정부의 조세개혁 과제를 제안한 논문에서 부가가치세율을 중장기적으로 15%까지 올릴 것을 제안했다.
그는 현행 10%인 기준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까지 올려야 한다면서 복지재정을 위해 2%포인트, 통일재원을 위해 3%포인트 인상을 제안했다.
소득재분배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는 부가세 인상으로 확보한 재원을 취약계층에 직접보조금 형태로 지급해 역진성을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기초생필품 면세제도도 소득재분배 효과를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가세율 인상이 최종소비자의 구매가격을 올릴 수 있는 만큼 부가세 인상에 앞서 면세거래를 과세거래로 전환할 것을 제시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부가세 면세제도를 정비하면 세율이 3%포인트 올라가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부가세 간이과세자를 확대하는 정책에는 반대했다. 간이과세자는 연간 매출액이 4천800만원 이하인 영세사업자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아도 된다.
김 교수는 간이과세 적용 인원이 전체 사업자의 37.7%(170만명)로 높은데 비해 납부 세액은 전체 부가가치세수의 0.2%(1천102억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확대하면 거래내용 파악이 더욱 어려워져 탈세의 온상이 되고, 근로소득자와 과세형평성 문제가 생긴다고 우려했다.
이른바 `버핏세' 등 소득세 최고구간을 추가 신설하는 방안도 내놨다. 현재 5단계인 소득세 과표구간을 미국, 일본 등 선진국처럼 6단계로 나눠 고소득층 위주로 증세하자는 얘기다.
소득공제 수준을 동결하는 방안도 소개했다. 소득공제에 물가연동제까지 도입하면 명목소득 증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세수가 증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인세는 국제적인 조세경쟁에 따라 세율이 더욱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소득세ㆍ부가가치세 증세 기조와 균형을 유지하려면 상대적 실효세율은 강화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된 무분별한 임시투자세액공제를 폐지하고 법인세수의 20%인 비과세 감면과 특례 범위를 점차 축소할 것을 제안했다.
소액주주 상장주식과 파생금융상품 양도차익 등 금융소득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의 조세정책을 비판했다. 2008년 법인세 감세로 발생한 혜택 대부분이 생산자 부문에 집중됐다는 이유에서다.
경제전반적 잉여 증가분 7조8천800억원 중 생산자잉여 증가분(6조5천500억원)는 83%에 달했다. 이 가운데 60%(4조6천700억원)는 기업의 내부유보금으로 쌓였다.
김 교수는 법인세 인하가 단기적으로는 대기업에 혜택을 집중시켜 대ㆍ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라는 정책목표에 다소 미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MB정부 성급한 소득ㆍ법인세율 인하 오류"
한만수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의 세제개편 과정을 평가한 논문에서 2008년에 소득세와 법인세율을 성급하게 낮추고 각종 조세지출을 늘리는 오류를 범했다고 평가했다.
이미 2008년 세제개편 당시 소득격차가 심화하고 서민층과 사회취약계층의 가계수지가 악화해 복지지출 수요가 늘어 재정건전성 제고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를 것이 예측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후속 연도의 세제개편에서 세율 인하를 철회하거나 오히려 세율을 올리고 각종 조세지출을 줄이는 조처를 했다.
주택수요의 지속적 감소 추세를 예측하지 못해 주택거래의 장애요인이 되는 세제를 과감히 정비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그러나 2009년 이후 세제개편은 호평했다. 대체로 3가지 기조를 유지했으며 경제ㆍ사회적 요구를 충실히 반영했다는 것이다.
3대 기조는 ▲서민층과 사회취약계층의 가계수지 지원을 위한 조제지원 유지나 증대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한 대기업과 고액 소득자 등에 대한 조세지출 대폭 축소 ▲성장동력 확충과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조세지출 유지 또는 확대 등이다.
한 교수는 향후 5년간 이런 3가지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재정수입의 안정적 확보와 지속적 경제성장의 지원이라는 다소 상충하는 목표 사이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목의 신설이나 세율의 대폭적 인상과 같은 가파른 증세정책에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민간 투자와 소비를 더욱 위축시켜 결국 사회 취약계층을 더욱 어려운 경제적 처지로 내몰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불필요한 조세지출을 폐지하고 숨은 세원을 발굴하는 미시적이고 점진적 조세수입의 확보 정책을 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우스 푸어' 부채의 점진적 해소를 위한 획기적인 조세정책의 추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택가격의 급격한 하락을 막고 주택거래를 활성화해 처분 대가로 채무를 갚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직접적이고 효과적 대책이라며 주택거래의 활성화를 과감하게 촉진하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문도 했다.
◇공평과세 위해 소득세 과표구간 세밀화해야
심충진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이 8천800만원 다음에 바로 3억원으로 뛰는 것은 공평과세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평과세를 달성하려면 동일 소득에 같은 세금을 매기는 `수평적 공평성'과 소득의 차이에 따라 세부담이 달라지는 `수직적 공평성'이 필요하다.
이 구간에서 조세부담률이 급증해 지나친 수직적 공평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8천800만원 초과 2억원 이하 구간에 32%의 세율을 적용하고 2억원 초과 3억원 이하 구간에 현행 35%의 최고세율을 적용할 것을 권고했다.
부부합산과세제도 도입도 제안했다. 미국의 경우 부부합산과세를 할 때 개인별로 세금을 매기는 것보다 수직적 공평성이 6% 증가한다.
법인세와 관련, "우리나라는 현행 법인세율이 미국보다 낮은 상태에서 감세정책을 실시해 부자감세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법인세 평균부담률은 20%, 미국의 법인세 평균부담률은 34%다.
그는 법인세율 최고구간을 현행 22%에서 30%로 높이고 세율구조는 5단계로 확대 개편할 것을 주문했다.
금융자산 양도차익과세 제도를 정착시키려면 ▲주식과 선물의 양도차익에 대한 5% 저율분리과세 도입 ▲양도차익과 차손에 대한 합산과세 도입 ▲양도차손의 이월공제 ▲소액투자자 보호장치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기준금액은 4인 가족의 1년 최저생계비용(1천794만6천600원)으로 하고 이를 초과하는 금융소득을 종합과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