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호 기 경향신문 경제부 차장
경찰과 검사, 교사, 기자가 함께 밥을 먹었다. 과연 누가 밥값을 냈을까? 시중에 떠도는 오래된 농담인데 정답은 ‘식당 주인’이란다. 경찰이나 검사, 교사, 기자가 공통적으로 권력집단에 속한 인물이라는 점을 비난하는 분위기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을 것이다.
국세청의 영문 표기는 NTS(National Tax Service)다. 미국도 국세청(Internal Revenue Service) 명칭에 ‘서비스’가 붙어있다. 한국의 58개 정부기관 중 Service를 사용하는 곳은 국세청 외에 국가정보원(National Intelligence Service)과 경호실(Presidential Security Service), 관세청(Customs Service), 산림청(Forest Service) 등이 있다. 2년 전에는 검찰청이 영문 표기를 Prosecutors’ Office에서 Prosecution Service로 바꿨다. 산림청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힘센 기관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을 4대 권력기관으로 꼽는다. 하지만 영문 표기만 보면 경찰(National Policy Agency)을 제외하면 모두 ‘봉사기관’ 딱지를 붙이고 있는 셈이다. 마치 겉으로는 봉사하는 기관임을 내세우면서 속에 감춰둔 힘을 은밀하게 과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취재기자로서 10년 가까이 출입하면서 본 국세청의 모습은 사실 이중적이다. 권력기관 이미지가 더 잘 어울리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봉사기관으로서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인사청문회에 나오는 국세청장 후보들은 “국세청은 권력기관이 아니다”라며 항상 같은 목소리를 낸다. 일은 하지만 소득이 낮은 근로자가구에 지원하는 근로장려금 제도는 국세청의 대표적인 서비스다. 취재 과정에서 만나는 국세청 간부들의 모습도 권위적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소탈한 편이다.
국세청은 왜 권력기관 ‘낙인’이 찍혔을까. 국세청에는 ‘돈과 정보’가 모이기 때문에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다. 과거 권력의 원천은 돈이었다. 국세청 차장이 기업들로부터 대선 자금을 걷어 정치권에 전달한 것이 불과 15년 전 일이다. 그 전에는 아예 통치권자의 정치자금을 조성하는 것이 국세청의 주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였다.
국세청이 기업을 상대로 손쉽게 돈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세무조사라는 전가의 보도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에서 세무조사 칼날을 피할 기업은 한 곳도 없을 것이다. 기업 뿐 아니라 자영업자까지도 재산과 수입·지출 현황을 낱낱이 까발릴 수 있어 세무조사 앞에서 벌벌 떨 수밖에 없다. 현직 대통령도 퇴임 후 누군가 자신과 관련한 국세청 정보를 들춰내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는 소문마저 나돌 정도다.
권력은 크지만 직접 행사할 일은 많지 않다보니 국세청에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세청은 환골탈태 하겠다는 각오를 내놨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세청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은 단골 메뉴였다.
국회의 국정감사 ‘쇼’가 끝난 뒤 일부 야당 국회의원들이 이현동 국세청장을 특수공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세청 국감 당시 야당 의원들이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과 함께 국감장으로 들어가려 하자 국세청 방호원들이 막아 국감이 파행을 빚었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청장의 지시가 아니라 방호원들이 스스로 판단해 진입을 막았다고 해명했다. 야당 의원들은 “국회 역사상 전례가 없는 위법행위로 국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국감에서 이현동 청장은 팔짱을 낀 채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국세청은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이 청장의 원래 스타일이 그렇다”고 말했다. 국세청 아니면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국감 전 국세청에 자료를 요청했다가 거부당했다는 한 의원 보좌관은 “납세자 개인정보 보호를 명분으로 무조건 안된다고만 하더라. 요지부동이었다. 국세청이 그렇게 센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각 대선 후보 캠프에서도 국세청의 막강한 권력을 줄이겠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은 ‘국세청 중수부’로 꼽히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손볼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4국은 주로 기획 세무조사를 하는데 정권의 지시에 따를 우려가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표적 세무조사를 막기 위해 국세청장에 대통령 측근을 임명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하자는 입장을 갖고 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은 합리적 세무조사 기준을 마련하고, 내부 견제장치를 둔다는 복안을 마련 중이다.
얼마전 친분 있는 국세청 간부와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메뉴와 서비스가 전보다 부실한 것 같아 알고 지내던 식당 주인을 불러 이유가 뭔지 물었다. 식당 주인에게 함께 식사하던 국세청 간부를 세무서에 근무하는 분이라고 소개했는데, 그 간부가 “요즘 장사가 잘 되는 모양이죠?”라고 웃으며 묻자 주인의 표정이 급격히 상기됐다. 혹시 세무조사라도 받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세무서 얘기만 들어도 일반 자영업자는 두려움을 갖는다. 국세청이 봉사(Service) 기관이라는 영문 표기는 문자로만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그날 점심값을 낸 것은 식당 주인이 아니었고 국세청 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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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592호(2012.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