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기 둔화가 지속하면서 10대 그룹 내에서도 양극화 경향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를 인정받는 삼성과 현대차그룹은 불황에도 실적이 나아지고 있는 반면, 내수 중심 등의 다른 그룹들은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실적이 악화됐다.
10일 한국거래소와 재벌닷컴에 따르면 올들어 3분기까지 10대 그룹(83개 상장사, 금융계열사 제외, 개별재무제표)의 전체 매출액은 508조3천억원으로 작년 동기의 478조6천억원 보다 6.2% 늘었다.
영업이익도 35조4천억원에서 37조9천억원으로 6.9% 증가했다.
삼성그룹 매출액은 10대 그룹 총 매출액의 30.0%, 영업이익은 전체의 46.2%에 달했다. 또 10대 그룹에서 현대차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액 19.8%, 영업이익 22.4%였다.
10대 그룹에서 삼성그룹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30.2%에서 올해 46.2%로 16.0% 포인트 상승했으며 현대차그룹 영업이익 비중은 23.2%에서 22.4%로 소폭 떨어졌다.
올해 삼성과 현대차 두 그룹의 영업이익을 합치면 10대 그룹 전체의 68.6%에 해당한다.
삼성과 현대차그룹을 제외하고 8개 그룹만 계산해보면 매출액은 253조원에서 255조원으로 0.8% 늘어나는데 그쳤다. 영업이익은 17조원에서 12조원으로 29.4% 감소했다.
10대 그룹 전체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삼성과 현대차그룹을 제외하면 매출은 제자리걸음을 했고 영업이익과 순이익 등 수익성 지표는 크게 나빠졌다.
삼성과 현대차그룹 실적 개선의 중심에는 삼성전자[005930]와 현대자동차가 있다.
삼성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으며 TV 시장에서도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올들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103조7천억원으로 작년 동기(87조3천200억원) 대비 18.8% 늘었으며 영업이익도 15조600억원으로 89.5% 증가했다.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전자 기업과 노키아 등 경쟁자들이 잇따라 쓰러지는 와중에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것이다.
현대자동차도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이 작년보다 3.7% 증가한 31조5천600억원, 영업이익은 9.5% 늘어난 3조4천400억원을 기록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제이디(JD)파워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의 올해 1∼3분기 세계시장 점유율은 역대 최고인 8.6%로 올라갔다.
현대증권 오성진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제품 경쟁력에다 글로벌 시장 업황까지 개선되면서 좋은 실적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LG그룹도 매출액은 작년 대비 3.8%, 영업이익은 20.0% 상승했다.
LG전자[066570]가 스마트폰 부문에서 경쟁력을 회복하면서 작년 1천100억원 적자에서 올해 2천300억원 흑자로 전환했다. LG디스플레이[034220] 역시 적자규모가 9천3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반면에 SK, 포스코, 롯데, 현대중공업, GS, 한화 등의 그룹은 영업이익이 두자릿수로 감소하는 등 경기 불황에 실적이 대폭 악화했다.
SK그룹은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이 작년 동기보다 2.1%, 영업이익은 31.8% 줄었다.
반도체 경기가 나빠지면서 SK하이닉스[000660]의 영업이익이 작년 3분기 누적 6천700억원 흑자에서 올해는 5천100억원 적자로 전환한 것이 큰 부담이 됐다.
현대중공업그룹도 영업이익이 47.1% 감소했다. 조선업황 부진으로 핵심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의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46.4% 줄어든 1조1천800억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포스코(-32.1%), 롯데(-35.5%), GS(-28.5%), 한화(-56.7%)의 그룹도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했다.
◇ 삼성ㆍ현대차그룹 실적이 좋은 이유는
국내 10대 그룹 내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자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선방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업황 호조'와 '경영 전략'이 맞아떨어지면서 시너지효과가 발생한 것이 올해 3분기까지 두 그룹이 활약할 수 있었던 주요 배경이라고 입을 모았다.
두 그룹의 실적을 끌어올린 대표 기업은 각각 전기전자(IT) 부문의 삼성전자[005930]와 자동차 업종인 현대자동차다.
일단 IT부문은 올해 세계 경기회복이 둔화하는 중에도 투자자들에게 기대감을 안겨줬던 업종이었다.
정유, 철강, 자동차 등 산업재ㆍ소비재 업종은 글로벌 경기부진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지만 IT업종은 스마트폰 판매량 증가를 기반으로 관련 기업의 실적 개선에 효자노릇을 했다.
자동차 업종도 긍정적이었다. 특히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수요가 크게 회복됐다.
2008년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억눌렸던 자동차 수요가 최근 주택관련 지표가 개선하면서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하이투자증권 고태봉 팀장은 "올해 전 세계 자동차 수요가 6∼7%가량 늘어났고 특히 미국의 수요가 12%가량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똑같은 업황 호조에도 동종 업계 내 기업들의 성적 부침을 결정한 것은 결국 개별 기업의 경영전략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이른바 '품생품사(品生品死)'로 불리는 품질중시 경영이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냈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연구원 황인학 실장은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든 품질을 우선시하라는 게 현대자동차 경영진 방침이었다"며 "기아차를 인수한 뒤 공동 연구개발에 힘을 쏟는 등 품질중시 경영을 펼쳤는데 최근 들어 좋은 실적으로 보상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품질중시 경영이 반드시 비용 측면에서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개발비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더라도 연구 성과물을 현대ㆍ기아차 양사에 모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타사보다 고정비의 효율이 높아질 수 있다.
고태봉 팀장은 "자동차 기업 중 무분별하게 해외공장을 짓다가 공급과잉으로 적자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현대ㆍ기아차는 정확한 수요 예측과 공격적인 마케팅을 적절하게 사용했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스마트폰 업계의 후발 주자였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선도업체인 애플을 따라잡기 위해 '뒷심'을 발휘한 점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황인학 실장은 "애플이 처음으로 아이폰을 출시했을 당시 LG전자, 노키아, 모토로라 등 상황을 낙관했던 타사와 달리 삼성전자는 그동안 축적해온 역량과 연구개발로 애플을 추격했다"고 밝혔다.
이런 활약의 배경을 그룹의 경영철학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미 경제 월간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삼성그룹 부상의 역설'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삼성은 윗사람을 존경하는 유교적 문화를 지녔지만 동시에 젊은 인재를 연장자의 상사로 승진시키기도 하는 조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HBR은 "삼성그룹에는 관계지향적 일본식 경영과 성과중심적 서양식 경영이라는 서로 도저히 부합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성향이 공존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양사의 활약은 해당 업계의 후발업체들에도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1등이 1등을 유지하는 것과 10등이 1등으로 올라오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선도하는 기업은 추가적으로 성장할 여력이 크지 않지만 후발주자들에게는 치고 올라올 기회이기도 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