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오 한국일보 경제부 차장
우리사회 엘리트들인 세무사들이 읽는 신문이니만큼 조금 까다로운 영어 해석문제를 내보려 한다. 영자지를 포함 몇 명의 기자들이 끙끙거리다 결국 제대로 풀지 못한 문제이기도 하다. 참고로 학창시절 성문종합영어를 독파해 고색창연한 영문에 익숙한 40대 이상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문제는 다음과 같다. “To tax and to please, no more than to love and to be wise, is not given to men.”해석에 성공했다면 여전히 최상위급 영어실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듯하다. 지난해 이맘때 국세청이 개최한 ‘외국계 기업 초청 세정간담회’에서 김문수 당시 국세청 차장이 인사말 도중 인용했던 18세기 영국의 보수주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의 명언이다.
올바른 해석은 “사랑에 빠졌을 때 인간에게 현명함이 동시에 주어지지 않듯이 세금과 즐거움도 마찬가지”쯤 될 것이다. 유통기한 지난 옛날 사상가의 고리타분한 재담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세무사신문의 원고청탁을 받자마자 이 말이 떠오른 것은 그 속에 담겨있는 “인간은 세금을 내야 할 때가 되면 있던 즐거움도 사라지는 본성을 부여 받았다”는 숙명론적 뉘앙스 때문이다. 버크의 통찰이 지금도 유효하다면, 의사가 건강을 잃은 사람들의 우울한 표정을 하루 종일 마주해야 하듯이 세무사도 돈을 벌었다는 기쁨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어떻게 하면 세금을 덜 낼 수 있을 것인가 신경이 곤두서있는 사람들만 매일 만나고 있을 것이다.
짐승들이 불을 무서워하듯 인간이 세금을 피하려 하는 것은 과연 본능인가. 이런 의문에 어느 정도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통찰력을 담은 책을 최근 읽었다. 영국 출신 철학자가 늑대와 11년간 동거하면서 그 체험을 정리한 <철학자와 늑대>다. 저자 마크 롤랜즈는 늑대와의 교류체험을 근거로 이성·지성 대 본능·쾌락이란 오래된 서양철학의 이분법적 대립을 무너뜨리려 한다. 인간의 이성이란 본능과 쾌락을 다스리는 능력이 아니라 바로 그 본능과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발달했다는 것이다.
책은 “(인간을 비롯한) 사회적 동물의 뇌는 일반적으로 혼자 생활하는 동물보다 크다. 왜 그럴까?”라는 물음을 던진 후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영장류 학자인 앤드루 화이튼과 리처드 번이 ‘마키아벨리적 지능 가설’이라고 불렀던 것 즉 뇌 크기의 증가에 따른 지능의 향상은 사회적 세계의 요구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를 키운 사회적 세계의 요구란 무엇인가. 롤랜즈는 첫째로 동료를 이용해 남보다 적은 비용을 들여 집단생활의 혜택을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동료와 연합해 자신 보다 강한 구성원에게 대항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즉 사람을 비롯한 영장류의 사회적 지능의 핵심은 속임수와 계략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논지가 침팬지의 사회관계 연구 등을 통해 거듭 입증된 과학적 사실임을 강조한 뒤 이렇게 결론 짓는다. “우리 영장류는 늑대들이 결코 꿈꿀 수도 없는 것을 해낸다. 바로 예술ㆍ문학ㆍ문화ㆍ과학 등 사물의 진리를 추구하는 일이다. …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기억해야 한다. 인류의 과학적ㆍ예술적 지능은 속임수와 계략의 피해자가 되기보다는 가해자가 되고자 하는 진화의 부산물이다”
이 뿐이 아니다. 우리가 학창시절 국가의 기원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로 배운 17세기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사회 계약론’에 대해서도 롤랜즈는 냉소적이다. 롤랜즈는 ‘야만인들을 사회 계약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모아놓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라고 묻는다. 그들은 협상보다 이 자리에 나타난 상대방을 없애려 할 것이 분명하다. 여러 차례 유혈사태가 반복된 후 간신히 사회계약이 맺어지더라도 계약 당사자간의 힘이 동등할 때나 유지되는 것이며, 한쪽이 약자라면 계약이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사회계약으로 이뤄진 사회에서 노약자나 장애인은 계약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또 사회가 유지되려면 계약 참여자들이 저마다의 자유, 시간, 노력의 일정 부분(한마디로 축약하면 세금)을 양보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계약은 상대방의 양보로 인한 혜택만 누리고 자신은 희생할 의사가 전혀 없는 사기꾼들에게 더 없이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준다. 인간의 지능의 핵심은 속임수와 계략이라는 롤랜즈의 결론을 상기해 보자. 결국 사기꾼과 이를 감시할 국가기구간의 무한한 ‘군비(軍備) 경쟁’은 모든 사회의 숙명이 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세금을 피하기 위한 온갖 지능적 노력은 인간의 본능과 이성에 충실한 것이며, 때문에 국가가 아무리 감시망을 정교하게 만들어도 완벽하게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온갖 유혹을 이겨내고 성실하게 자신의 소득을 신고하고 정당한 세금을 내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롤랜즈는 ‘도덕의 뿌리를 이성에 두지 말자’는 제안을 통해 이런 난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 이성의 근원이 사회관계 속에서 손해보지 않으려는 속임수와 계략에 있다면 이성은 결국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는 악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될 것이다. 또 상대방이 알아챌 수 없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주저 없이 속임수와 계략을 발휘할 것이다.
결국 어떤 인간이 도덕적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약자를 대하는 순간뿐이다.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도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진정한 인간의 선은 아무런 힘이 없는 자들을 대할 때 순수와 자유로움 그 자체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약자에 대한 자비는 인간만의 특성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서 발견되는 미덕이란 점은 애완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여러 번 목격했을 것이다.
이제 에드먼드 버크의 명언으로 되돌아갈 순간이 됐다. 이성적 존재는 사랑과 현명함이 공존하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듯이 결코 세금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인간은 전적으로 이성적인 존재가 될 만큼 ‘진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약자에게 따뜻함을 베풀고,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걸 알면서도 이웃과 사회를 위해 기꺼이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무사라는 직업은 이 같은 인간의 선의(善意)가 제대로 실현되도록 또 지속가능 하도록 돕는 귀중한 직업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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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597호(201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