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규 중앙일보 경제부 차장
‘정중동(靜中動).’
요즘 국세청 분위기다. 정권 교체기지만 예전과 달리 국세청은 차분하다. 겉으로 볼 때 일단 그렇다.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기보다는 현상 유지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다만 국세청 직원의 촉각(觸角)은 온통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있는 삼청동으로 향해 있다. ‘수장’이 누가 될 지에 따라 각 구성원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동분서주(東奔西走).’
지난해 세무서를 그만두고 은행 프라이빗뱅커(PB)가 된 한 세무사는 지난 몇 달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쏟아지는 고객의 질문에 대응하느라 화장실도 못 갈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를 이렇게 바쁘게 하건 바로 즉시연금이다. 세제 개편으로 즉시연금의 무제한 비과세 혜택이 2월14일까지만 적용돼 그전에 가입하려는 고객의 세무상담이 폭주했다.
세금을 다루고 납세자를 고객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국세청 직원과 세무사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관련법에 따라’라는 전제가 붙지만 국세청은 최대한 납세자로부터 세금을 거둬야 한다. 반면 세무사는 납세자에게 최대한 세금을 덜 내는 방법을 조언한다.
금융시장에서 즉시연금은 ‘열풍’도 모자라 ‘광풍’으로 불렸다. 한 달에 몇백억원에 불과했던 돈이 세제혜택 축소 발표 뒤엔 수조 원씩 몰려들었다. 많은 돈을 감당하지 못한 보험사는 상품 판매중단을 선언하기도 하고, 한도를 정해 판매를 제한하기도 했다. 은행과 보험사는 몰려드는 고객으로 ‘홍역’을 앓아야 했다.
‘즉시연금 광풍’을 몰고 온 건 다름 아닌 세금이다. 상속형 즉시연금은 목돈을 맡기면 매달 이자만 받고 원금은 나중에 본인 또는 자식이 찾을 수 있는 보험 상품이다. 2월14일까지는 10년 이상 유지하면 전액 비과세였지만 세제 개편안에 따라 2월15일부터는 2억원 이하까지만 비과세다. 이 세금 때문에 올들어 2월14일까지 4조원에 달하는 돈이 즉시연금으로 몰렸다.
요즘 경기는 좋지 않지만 갈 곳 잃은 돈은 넘쳐난다. 부동산이 깊은 수렁에 빠진 데다 주식시장도 맥을 못추고 있다. 여기에 금리까지 낮으니 투자자는 그야말로 ‘길 잃은 아이’처지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 자산가에 투자 상담을 해주는 은행 PB조차 “요즘처럼 투자 권유를 하기 힘든 때가 없었다”고 할 정도다. 600조~700조원으로 추산되는 부동자금은 아직도 갈 곳을 찾고 있다. 예전엔 4~5% 수익률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투자자가 1% 포인트의 수익률 차이에도 이게 어디냐며 과감하게 투자처를 바꾼다. 그러니 작은 수익률 차이에도 돈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많은 돈이 작은 수익에도 한꺼번에 몰리니 수익률은 더욱 떨어진다. 예금 이자보다 약간 높은 수익률을 내기도 버거운 상황이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세금 덜 내기, 즉 절세(節稅)로 눈을 돌리고 있다. 개인의 움직임이 ‘투자’에서 ‘절세’로 옮겨가는 것이다. 절세 상품이 나왔다 하면 얼마 되지 않아 동나기 일쑤고 금융사 세무상담사의 문턱이 닳을 정도로 절세 문의가 빗발친다. 자산가이건 서민계층이건 세금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골몰한다. 이런 현상은 하루가 다르다.
국세청 입장에선 달갑지 않다. 안 그래도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 마당에 수많은 납세자가 절세에 골몰한다면 세수는 더욱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나라 살림이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적자(-1484억원)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가 더 큰 문제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올해 예산안을 마련할 때 경제성장률을 4%로 예상했다. 이 성장률에 맞춰 216조4000억원의 세금이 들어온다고 봤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전망한 올해 경제성장률은 2.8%다. 예산안을 마련할 때 예상치와 1.2%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정부는 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세수가 2조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더군다나 박근혜 정부는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해 5년간 135조원의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국세청엔 ‘비상시국’이다. 그래서 최근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겠다며 태스크포스(TF)팀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갑자기 ‘지하경제’에서 많은 세수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그동안 국세청이 해 온 대부분의 업무가 사실상 ‘지하경제 양성화’이기 때문이다.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세수 확보는 하늘의 별 따기다. 결국 올해는 세무사의 조언으로 무장한 납세자와 조금이라도 세수를 더 확보하려는 국세청의 ‘혈전(血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중동’의 국세청이 ‘동분서주’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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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598호(2013.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