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원기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신약성서 마태복음 21장 31절에 나오는 예수의 발언은 세무공무원에 대한 사회의 극도의 불신 내지 반감이 역사적으로 매우 뿌리 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세무공무원을 극도로 혐오하고 이들의 행위를 죄악시하는 유대인들에게 세무 공무원이 자신들보다 더 하나님(신)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예수의 말은 분명 견디기 힘든 비유였을 것이다. 이 구절 뿐 아니라 성경은 곳곳에 세리(稅吏)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마도 당시 로마제국 통치 하에서 세리들이 지배층인 로마 정부를 위해 일한 대표적인 인사들로 낙인찍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실 세금은 인류 문명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됐지만 세금을 걷는 세무공무원, 이름하여 세리는 언제나 환영받지 못했다. 부정직한 세리들이 유난히 많았던 시대상도 있겠지만, 피땀흘려 번 돈의 일부를 가져가는 직업으로 인식되는 세리들이 대중의 환영을 받을리 만무하다.
오늘날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올들어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을 위한 중요한 조치 중 하나인 ‘특정금융거래보고에 관한 법률’(이하 FIU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바로 이와 같은 세리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소관 상임위를 거칠 때도 진통을 겪었던 이 법률 개정안은 법사위에서도 순탄치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정무위 논의과정에서의 핵심 쟁점은 국세청이 아무때나 원하면 FIU(금융정보분석원)가 보유한 STR(혐의거래보고), CTR(고액현금거래보고) 자료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느냐였다. 국세청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이 조치가 필요함을 주장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률 개정안은 대부분 당초 금융위원회가 주장했던 대로 통과됐다. 탈세혐의가 있는 경우에 한해, 국세청이 요청해야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게 개정하기로 합의가 됐다.
아쉬운 대로 권한이 소폭 확대됐다고 생각했지만 개정안은 법사위에 가서 또 난관에 부딪혔다. 상임위을 통과한 법률 개정안은 통상 법사위에서 자구나 들여다보고 관련 법과의 충돌 여부, 연관성 등을 검토하는 과정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 법률 개정안은 법사위에서 다시 한번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다. 김현미 민주당 의원 등은 국세청에 FIU 정보 제공시 당사자에게 즉시 내용을 통보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안을 들고 나왔다.
사실 정보의 성격을 봤을 때 이런 주장은 상식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은행 등 금융기관이 FIU에 보고하는 STR은 일종의 ‘제보’다. 제보된 정보를 활용하면서 그 정보를 활용할 경우 당사자에게 통보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CTR의 경우 2000만원을 넘는 현금 거래가 금융당국에 보고된다는 것은 이미 당사자들이 알고 있는 사안이다.(또는 금융기관이 마땅히 알려주기 마련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사안에 이중, 삼중의 보호 장치를 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조치까지 곁들여지면 국세청으로선 사실상 그간의 노력이 말짱 도루묵이 되는 셈이 된다. 국세청이 CTR과 STR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확대하려는 것은 은밀한 탈세 행위를 적발하려는 것인데, 당사자에게 관련 내용을 다 알려준다면 굳이 법 개정안을 힘들게 할 필요가 적어진다.
번번이 국세청의 주장에 태클이 걸리는 저변에는 국세청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반감이 있다. 국회의원들 뿐 아니라 대다수의 학자들, 연구원 등 전문가들까지 국세청의 논리에 동조하면서도 선뜻 국세청이 주장하는대로 법률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못하는 것은 그저 막연하다고만 치부할 수 없는 이런 불신 때문. 금융위와 민간 전문가들은 드러내놓고 국세청이라는 기관의 속성 문제(권력 기관, 정치적 입김이 강한 곳)를 거론하며 권한의 추가적인 확대, 개인 정보 유출 등을 우려하고 있다.
하필이면 이런 때 국세청 공무원들의 과거 비리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는 것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세무조사 확대를 외치는 국세청으로선 곤혹스런 부분이다. 가뜩이나 국세청은 아무 비리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대중들로부터 각종 의혹의 눈길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성경에서 예수는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세리와 어울리는 것은 물론 세리였던 마태를 불러 제자로 삼기까지 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에서 대중들로부터 당장 세리에 대한 포용과 신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심지어 예수도 세리와 어울린 것으로 인해 손가락질을 받아야했다.
신임 김덕중 국세청장은 비리 척결과 내부 감찰 강화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고 있다. 필요한 조치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외부의 신뢰를 얻기란 힘들 것이다. 현재 FIU 법 개정 논의는 국세청 입장에선 이미 용두사미격이 되고 말았지만 뱀 꼬리조차 그리지 못하고 아무 성과 없이 조직의 리소스만 낭비하는 꼴로 결론이 날 가능성마저 농후하다. 어쩌면 국세청은 내부 감찰보다 세수 확보를 위한 플랜B 마련이 더 시급할지 모르겠다. 국세청 본연의 업무는 칭찬을 받는 것보단 세금을 걷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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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604호(2013.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