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양규
헤럴드경제 경제부 기자
이수영 OCI 회장 부부를 비롯해 최은영 한진해운홀딩스 회장, 연극인 윤석화 부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까지...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조세피난처 연루 인사 명단 공개가 잇따르면서 국내 지도층의 역외 탈세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버진 아일랜드 등 이른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설립한 탓에 비자금 은닉 등 각종 탈세 의혹을 받고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조세피난처 연루 한국인 명단은 현재 5차까지 발표된 상태다. 오는 17일 추가로 한국인 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다. 따라서 재계는 물론 정계와 학계 등 각계 각층의 이목을 집중 시키고 있다.
탈세와 탈루는 정직하지 못해서 비롯된 행위다. 이른바 ‘양심을 져 버린’ 행동이다. 우리들은 양심을삶에 있어 최소한의 덕목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마다 돈 버는 능력이 다르다. 때문에 양심을 두고 고뇌한다. 능력에 따라 돈을 많이 벌수도 있고 적게 벌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국가에서 정한 법에 따라 납세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 탈루란 자신이 벌어들인 수입을 줄여 세금을 덜 내는 것을 뜻한다. 탈세는 수완(?)좋은 사람들이 조세피난처와 같은 곳에 비자금을 은닉하는 등 부정적인 방법을 활용해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이다. 탈세와 탈루는 변명조차 할 수 없는 범죄행위다. 특히 한달을 열심히 일해 적지만 하루동안 힐링할 수 있는 월급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대재산가들의 수백억에 달하는 탈세 행각들은 적잖은 허탈감을 남긴다. 그야말로 정신적 약탈행위나 다름없다. 때문에 탈세와 탈루가 사회적으로, 도적적으로 더욱 지탄을 받는 이유다.
박근혜 현 정부가 들어선 지 3개월이 지났다. 박 정부가 내세운 핵심 국정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지하경제 양성화다. 정부는 경제 성장 잠재력 확충과 각종 공약으로 내세운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란 카드를 내놨다. 이를 통해 연간 4조5000억원의 추가 세수입을 확보한다는 게 현 정부의 전략이다. 즉 국민들에게 세금 부담을 지우지 않고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 핵심에는 국세청이 있다. 국세청은 첫 업무보고부터 탈세와의 전쟁을 강조, 탈세 근절 의지를 강력 표방한데 이어 기업체와 금융권을 막론하고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역외 탈세 조사는 물론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대 국세청장이 김덕중 청장은 내정자 시절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지능적인 역외 탈세에 대한 강력한 근절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특히 당시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가 해외금융계좌 문제로 사퇴한 사건이 벌어진 탓에 당시 사회고위층에 대한 탈세 의혹이 또 불거진 바 있다. 이는 국세청의 조세 정의 구현에 대한 역할론을 더욱 요구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러나 왠지 국세청이 여전히 국민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즉 핵심을 피해 겉돌고 있는 듯 하다는 얘기다. 일례로 국제탐사보도 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각계 각층의 탈세의혹 인물들에 대한 조사가 그렇다. 국세청은 국가기관이다. 때문에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 만큼 책임이 막중하다. 게다가 권력을 쥐고 있다. 이처럼 강력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 국세청이 ICIJ가 조사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언론을 통해 알린 후 비로소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재산을 숨긴 대재산가 신상 명단 조사에 나서겠다고 한건 뒷북을 쳐도 너무 심하게 친 셈이다.
ICIJ는 지난달 첫 기자회견을 통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한국인이 무려 245명이었다고 밝혔다.
조세피난처(Tax Haven)는 법인의 실제 발생소득 전부 또는 상당부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거나, 법인에 부과된 세금이 실제 발생 소득의 15% 이하인 국가 또는 지역을 뜻한다. 기업으로서는 조세피난처를 활용할 경우 절세나 탈세가 가능하지만, 정부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세수감소가 발생한다.
즉 세제상의 우대뿐 아니라 외국환관리법 등과 같은 규제가 적고, 기업 경영상의 장애요인이 없다. 더구나 모든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철저히 보안된다는 점에서 탈세와 돈세탁용 자금 거래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곳이다.
역외 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한 국세청은 그 동안 각종 탈루, 탈세 방지를 위한 수많은 대책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책강구에만 몰두했는지 조세피난처에 대한 조사 등 실질적인 행동에 나섰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있다. 탁상공론에만 머물지 말고 곧장 실행에 옮겼어야 했다. 그리고 역외 탈세 등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 준비에 나서야 했다.
특히 국세청에서 역외탈세 분석을 담당하고 있는 역외탈세담당관실은 불과 과(課)수준이다. 담당 인원이 30여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반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ICIJ가 확보한 인원은 245명이다. 즉 국세청이 역외 탈세 여부를 검증해야 할 대상에 비해 담당 인력이 턱 없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올해 안에 탈세 혐의를 분석, 확인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요컨데 역외 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탈세혐의자에 대해 엄중 조사하겠다는 국세청의 의지는 매우 존경할 만하다. 하지만 공언이 아니길 바란다. 고위를 막론하고 탈세 혐의자에 대한 신속하고 명쾌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탈세 근절을 위한 국세청의 노력을 온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국세청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인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대재산가와 고소득 자영업자, 민생침해, 역외탈세 등 4개 분야를 중점 과제로 선정했다. 국정과제의 체계적 이행에 있어 선도해 나가는 국세청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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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606호(2013.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