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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기자실]‘분노’와 ‘냉소’ 사이

 

      안혜신 이데일리 기자


상습적으로 약속에 지각하는 친구가 한명 있다. 처음은 괜찮았다. 일찍 다니라는 타박 정도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행동이 반복되자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 한번 크게 싸움이 났다. 하지만 이후에도 친구의 고질병은 고쳐지지 않았다. 조금 잘하는 듯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제자리였다. 이 친구가 약속시간을 잘 지키면 오히려 ‘어쩐 일이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상습지각은 이제 분노보다는 냉소를 불러오게 됐다.


국세청과 내부비리의 관계를 정확하게 이 친구와의 관계에 대입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국세청에 대한 인식은 안타깝게도 바닥이다. 포털사이트에 ‘국세청’이라는 단어만 검색해 봐도 답은 바로 나온다. 국세청과 함께 나오는 연관 검색어는 ‘비리’, ‘부조리’, ‘소송’ 등이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국세청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지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국세청과 비리의 끈끈한 유대관계(?)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상습지각이 습관이었던 친구처럼 국세청 역시 마치 습관처럼 비리가 끊이지 않는 조직 중 하나다.


지난 3월 야심차게 출범한 김덕중호도 출범한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비리문제로 큰 타격을 입었다. CJ그룹 로비사건에 전·현직 청장들이 휘말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직 서울청장이 자진사퇴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가뜩이나 국세청에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던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은 덤이었다. 눈여겨봐야할 것은 국민들의 반응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실망이나 분노보다는 ‘그럴 줄 알았다’며 냉소를 보냈다. 만성화 된 국세청의 비리에 화조차 나지 않을 정도가 된 것이다.


이는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국세청의 고질적인 비리 사건과 무관치 않다. 국세청은 정권마다 세정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국세청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각종 비리에 휘말리면서 조직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과거가 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8명의 국세청장 가운데 안정남·손영래·이주성·전군표·한상률 전 청장 등 5명이 비리 혐의에 연루돼 불명예 퇴진하거나 사법 처리된 전례가 있다.


4대 권력기관 가운데 하나인 국세청은 정부 부처 중 가장 법을 잘 지켜야 하는 곳 가운데 하나다. 세무행정은 엄정해야 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세법률주의는 국민보다 세무공무원이 더 철저히 지켜야 한다. 세무공무원의 수장인 국세청장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신뢰를 받지 못하는 곳이 국세청이고 국세청장이었다.


국세청 내부에서 이번에야말로 비리로 얼룩진 조직을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국세청은 지난 8월 100대 기업 관계자들과 식사나 골프 등의 사적인 만남을 전면 금지하는 등 나름대로는 특단의 조치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세청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소적이다. 이러한 시선은 지난달 진행된 국정감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야의원들은 국세청의 쇄신책에 대해 ‘과거 쇄신안을 되풀이하는 수준으로 국세행정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씻을 수 있을지 의문’, ‘큰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책을 내놨지만 정작 달라진 것이 없는 만큼 순간의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라는 혹평을 쏟아냈다. 대다수 국민들의 인식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세청은 그동안 문제가 터질 때마다 ‘노력하겠다, 반성하겠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아니, 아예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국세청 비리 소식에 이제 분노보다는 냉소가 먼저 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기던 친구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칼같이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이다.


노력하는 와중에 또 다시 지각을 해서 냉소를 받더라도,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묵묵하게 노력해야 한다. 국세청 역시 마찬가지다.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위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무사신문 제615호(20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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