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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2241]
[국세청기자실] 봄에도 낙엽은 진다

 

이인열 조선일보 경제부 차장


 

오늘 저는 세금이나 경제 얘기 대신 얼마 전 출장 다녀온 ‘인도 얘기’ 하나를 할까 합니다. 저는 2006∼2007년까지 조선일보 인도 뉴델리 특파원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친디아니 브릭스니 하면서 인도는 금세 미국, 중국을 따라 잡을 태세였습니다. 하지만 7년만에 찾은 인도는 작년 5월부터 시작된 미국발(發)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후폭풍으로 상당한 고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도심에서 조차 하루 4시간 정도, 공장 지역엔 무려 10시간 안팎의 정전이 이어지는 엉망수준의 인프라는 여전했습니다. 또 정치권의 무능으로 개혁 법안들은 잠들어 있고, 외국인들이 투자하려해도 땅하나 내주지 못하는 정치 리더십도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인도 땅에 오래 머무는 분들의 얘기는 그래도 조금씩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인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요?  코끼리, 타지마할, 소, 사리(인도 전통 의상), 간디.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요. 하지만 인도를 잠시라도 다녀오거나 지내거나 살다가 온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완전히 다른’(totally different) 나라라는 것이죠. 먹는 음식도 차이가 참 큽니다. 또 생각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도 참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이런 많은 차이점이 때로는 많은 깨달음도 줍니다. 사실 우리는 다른 것을 늘 틀리다고 여기곤 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는데, 생각은 그렇게 하곤 하지요. 제가 오늘 소개하려는 것은 예전 인도에서 머물면서 인도의 차이에서 느낀 작은 깨달음입니다. 지금부터 얘기 해보겠습니다. 
인도 뉴델리의 외국인 밀집지역인 바산트 비하르(Vasant Vihar)의 한 주택가 2층. 제가 사는 집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면 먹이를 찾아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부랑우(집 없는 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는 그야말로

 소들의 천국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인구 11억명(당시, 지금은 12억 3000만명)의 인도엔 소가 3억마리 있는 것으로 추산되었습니다. 이 중 정처 없이 도시나 시골의 골목길을 누비는 부랑우만 1억마리가 넘는 다고 했습니다. 매일 아침 이곳에서 목격하는 소들은 1억마리가 넘는 부랑우 중 몇 마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웃음을 짓곤 했더랬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인도에선 소를 신성하게 여겨 아무도 살육하지 않기 때문에 수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찾았더니 2010 영연방 경기대회 유치하면서 그많던 도심의 소들을 깔끔히 치워놓아 깜짝 놀라긴 했습니다) 당시 이 소들은 간혹 큰길 한가운데를 독차지해 교통체증까지 일으켜 뉴델리 같은 대도시에선 엄청난 골칫거리였더랬습니다. 오죽하면 인도 정부가 나서서 일년에 한 번쯤 이들 소를 트럭에 태워 농촌으로 싣고 가서 버리기도 했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었습니다. 먹이를 찾는 부랑우들은 금세 대도시의 쓰레기 하치장 등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월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동네 골목길에서 부랑우 외에 낯선 물체를 발견하기 시작했기 때문었습니다. 시선을 붙잡은 것은 바로 주먹보다 큰 노란색 낙엽이었습니다. 뉴델리가 남반구도 아닌데 지금 무슨 낙엽일까 싶었습니다.


뉴델리는 우리와 같은 북반구라 11월부터 2월말까지는 영상 0~20도 안팎의 살살한 겨울입니다. 3월이면 막 여름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그런데도 낙엽이 한창이라니요? 여러분도 의아하시죠? 부처께서 득도하실 때 작열하는 인도의 태양을 가려줬다는 보리수는 물론 수많은 가로수의 잎들이 3월 중순부터 마르기 시작해 3월 말쯤이면 한창 잎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만물이 만개하는 여름으로 넘어가는데 왜 낙엽이 질까요. 겨울을 보내자마자 낙엽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현상’은 아닐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뉴델리에선 수천 년 전부터 늘 이맘때면 어김없이 낙엽이 졌다고 합니다.


이유는 바로 생존의 법칙 때문입니다. 인도에선 3월 말부터 섭씨 40도를 넘는 무더위가 시작됩니다. 한창때는 50도를 넘깁니다. 3월부터 최소 4개월 이상은 이 나무들이 최고 섭씨 50도까지 오르는 혹독한 더위와 싸우며 자신들의 존재를 지켜내야 합니다. 고온에 적응력이 강한 열대수가 아니어서 잔혹한 더위가 이들의 생존을 위협합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하나 둘씩 가볍게 하고 있으며, 그 작업이 바로 ‘3, 4월의 낙엽’이란 것입니다. 추울 때만 낙엽이 진다고 여겼는데, 이런 자연현상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낙엽이란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게됐지요.


인도에서 10년째 거주하는 이건준 박사(산크리스트어)는 “유학 초기 4월의 낙엽을 보고, 다시 한번 나의 고집과 오만을 반성한 적이 있다”고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이 진리의 전부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독특한 경험 속에서 지식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부끄러워하게 된다고 ‘인도를 사랑하는 분’들은 얘기해 줍니다.
인도에선 이런 ‘경이스런 일’들이 왕왕 있다고 합니다.

델리에선 정작 4월 하순 이후 한여름이 되면 모기를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더워지면 모기들이 산란을 못해 사라지기 때문이랍니다. 8월 이후 몬순 더위가 한풀 꺾이면 다시 등장합니다. 악명 높은 뎅구열도 그때쯤 기승을 부립니다. 인도에서 4월의 낙엽을 보면서 제가 감히 가져본 ‘작은 깨달음’입니다.


※위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무사신문 제624호(201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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