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영 CBS기자
‘균공애민 절용축력(均貢愛民 節用畜力)'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1층 조세박물관 특별전시실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 세금을 고르게 하여 백성을 사랑하고 씀씀이를 절약해서 힘을 축적하라는 뜻으로 영조가 1734년 경제 업무를 담당하는 호조에게 친필로 적어 하사한 조세행정의 지침이다. 공평과세를 강조한 이 문구는 조세행정의 원칙론을 천명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당시 조선의 조세행정 상황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문구이기도 하다.
영조 집권당시 조선은 세금을 내지 않는 양반의 폭발적인 증가로 세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부족한 세금을 채우기 위해 관리들은 백성들에게 추가 세금을 요구했고 백성들의 고통은 가중됐다. 이에 영조는 '공평과세'라는 조세행정 지침을 내렸고, 이후 양반까지 징세 대상으로 삼은 균역법을 시행하게 된다. 그러나 양반들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세금을 내지 않았고 백성들에게만 부담을 주는 법안이 됐고 향후 국가 시스템 붕괴로까지 이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임환수 신임 국세청장이 취임사를 통해 향후 국세청을 이끌어갈 기조로 '균공애민'을 꼽았는데, 올해 국정감사를 통해 이 기조가 우리나라 조세행정에 꼭 필요한 기조라는 점이 역설적으로 입증됐다. 김영록 의원은 국세청이 대기업에는 5조6000억원을 깎아주고 '유리알지갑'이라는 봉급자와 자영업자에게는 3조3000억원을 더 거둬들였다고 주장했다. 기획재정부의 2013년 세입세출 마감 자료에 따르면 근로소득세 2조3000억원, 종합소득세 1조원 등 총 3조3000억원이 전년보다 늘어났다는 것이다.
각종 공제를 감안하면 대기업들이 실제 부담하는 세금이 중견·중소기업이 부담하는 세금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이 오제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기업의 법인세 부과 기준인 과세표준 5000억원을 초과하는 법인의 경우 실효세율이 18.5%로 중견·중소기업인 과세표준 1000억원 이하 기업(19.1%)과 과세표준 1000억원 초과 5000억원 이하 기업(20.2%)보다 오히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10대 대기업이 낸 실제 세금은 더 적었는데 최재성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대기업의 공제감면액은 3조1914억원, 실제 낸 세금은 4조332억원으로 실효세율은 12.3%에 불과했다.
내는 세금은 물론 세금을 신고하고 납부하는 과정에서 세금 외에 추가적으로 부담하는 비용인 납세협력비용을 보면 자영업자들은 답답함에 가슴을 치게 된다. 국세청이 윤호중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상시종업원 수 300명 이상 대규모 사업자는 매출액 1만 원당 납세협력비용이 1.1원인데 반해 10~99명 규모 사업자는 23.0원, 1~9명 규모 사업자는 49.8원, 종업원이 없는 사업자는 70.7원을 부담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종업원이없는 초영세사업자가 대형사업자보다 납세협력비용을 70배 더 부담하는 것이다. 양반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세금을 내지 않고 시전상인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세금을 뜯기는 조선 후기 같은 상황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납세에 대한 부자들의 꼼수와 이를 포착하지 못하는 국세청의 행태를 보면 균공애민이라는 표어는 더욱 공허하게 다가온다.
부자들이 ‘절세'로 포장하고 있는 세금 회피행태와 이에 속수무책인 국세청을 보면 균공애민은 남의 나라 이야기 같다. 김관영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 동안 부담부증여 3만1,607건이 이루어진 반면 조사는 6건에 대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증여 때 부채가 얹어 있는 경우 증여재산 가액이 줄어 누진세 성격이 있는 증여세를 크게 줄일 수 있는 부담부증여는 증여 후 해당 부채를 증여받은 사람이 직접 갚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상 증여자가 부채까지 갚곤 한다는 문제 지적이 있어왔다. 김 의원은 "부담부증여가 탈루창구이자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오용될 수 있지만 사후관리감독에 소홀하다”며 과세당국의 업무태만을 지적하기도 했다.
재벌과 부유층의 탈세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온 공익재단 관리는 어떤가. 국세청이 김관영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 동안 공익법인을 통해 비과세 처리된 재산가액이 5,820억 원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적지 않은 증여세와 상속세가 공익재단의 공익적 기능을 기대하면서 감면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후 점검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재단은 매년 사업보고서를 관활 세무서에 제출도록 되어 있지만 이 보고서를 기초로 세정당국이 행정지도를 한 실적은 전무하다는 것이 김 의원의 주장이다.
‘나는 부자들’과 달리 ‘기는 서민들’은 ‘뛰는 국세청’에 기필코 잡히고야 만다. 박명재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세청이 근로장려금을 지급했다가 수급 부적격으로 장려금을 환수한 가구가 8,112가구, 환수 금액은 60억 8,400여만 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한해 평균 2만 7천여 가구는 근로장려금 수급대상이지만, 국세 체납으로 근로장려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쯤 되면 대기업, 부자들에게 속수무책인 국세청이 서민들에게 ‘유독 유능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국세청도 할 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대형로펌과 세무사무소에서 법률자문을 받는 대기업과 고액자산가들의 절세(혹은 편법적인 탈세)와 영세자영업자들, 근로소득자들의 절세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그러나 세금을 덜 내거나 내지 않는 양반들의 폭발적 증가, 그로 인한 세수부족과 세금을 내는 양민의 붕괴로 조선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듯 대기업과 부자들에 대한 감세와 이들의 탈세 행위를 적발해내지 못한 채 21세기 양민(영세자영업자와 근로소득자)들에게만 세수부족을 보전하려 한다면 대한민국 역시 얼마나 버틸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익이 있는 곳에 공평하게 세금을 부과하려는 공정과세만이 지하경제 양성화의 후폭풍을 잠재울 수 있다. 신임 국세청장의 취임사(균공애민)가 공염불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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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638호(2014.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