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덕 준
부산일보 서울경제팀 부장
이것 참 이상한 일이다. 올해 초 정치권과 언론에서 연말정산 문제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을 때 노태주 전 부산세무사회 회장은 답답한 듯이 기자에게 말했다. 그는 “지난해와 똑같은 조건으로 아무리 계산해도 세금 내는 게 달라지는 게 별로 없는데 대체 왜 이런 얘기가 나오는가요”라고 말했다.
기자도 국세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연말정산 계산식에 나의 연봉을 대입하고 지난해와 올해 얼마나 세금부담이 달라지는지 검증해봤다. 조건을 똑같게 하거나 약간 달리 해도 세금부담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곳곳에서 ‘연말정산 이번엔 세금폭탄’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연봉이 적든 많든 지난해보다 세금이 대폭 늘어 연말정산 때 돌려받기는커녕 오히려 많은 돈을 환급해야 할 실정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국회 속기록을 한번 들여다보자.
2월 4일 국회 기획재정위.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연말정산 사태의 원인은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의 오만과 독선이다. 재벌과 슈퍼부자 세금을 성역화했기 때문에 중산층의 세 부담을 높인 겁니다. 왜 거짓말을 하시는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최경환 부총리에게 말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국민들이 느끼는 것은 이번 조치로 인해서 내가 부담이 이전보다는 늘었으니까 증세다라고 느끼는데 정부에서는 세목·세율을 얘기하면서 증세가 아니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거든요. 바로 이런 괴리예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홍역을 치른 후 4월 7일 기획재정부에서 연말정산 전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봉 5천500만 원 이하 구간에서는 85%가 세금부담이 지난해와 달라진 점 없이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줄었다. 15%는 늘었다. 5천500만~7천만원 구간은 1인당 평균 3천원 늘었다. 대신 7천만원 이상 구간은 1인당 평균 109만원 증가해 세금부담이 상당히 커졌다.
이같은 결과는 기재부가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세법을 바꾸면서 내세운 설계와 거의 같다.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 저소득자에게 근로장려세제 등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어느 해 연말정산을 해도 공제항목이 조정되면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사람, 줄어드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초점은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사람에게만 집중됐다. 결국은 세금부담이 증가하는 근로자에겐 이미 낸 세금을 되돌려주기로 하는, 매우 드문 사태가 발생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문제에 대해 미적거리다간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정치권의 대처가 낳은 결과다.
이번 연말정산에서 만약 정부가 잘못한 점이 있다면 출산·입양공제를 없애고 자녀세액공제 통합으로 3자녀 이상 가구에 대한 공제를 축소한데 있다. 출산장려정책과 거꾸로 가게 된 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자녀장려세제나 양육수당 등 다른 방식으로 지원되기 때문에 공제를 축소했다는 것이 기재부의 설명이다.
결론은 이번 연말정산은 세금폭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기재부 관계자는 “세금폭탄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폭탄이라는 말을 그렇게 맘대로 쓸 수 있는가”라며 “올해 연말정산이 세금폭탄도 아니고, 설령 그렇다해도 세금과 관련된 용어에서 폭탄이라는 말은 쓰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금이 무섭기는 정말 무섭다. 연말정산 파동을 지켜보노라면 이젠 ‘증세’의 ‘증’자도 꺼내지 못할 분위기다. 우리나라 국민의 세금부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게 중론이다. 세금과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료를 더한 국민부담률은 OECD 30개 나라 중에서 28위다.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고 영유아 양육수당을 지원하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려면 현재의 세금으로는 매우 버겁다. 또 앞으로도 장애인과 불우이웃들이 생활고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려면 정부의 지원은 더 늘려나가야 한다.
물론 낭비성 예산은 없애고 각종 정부 보조금은 꼭 필요한 곳에 아껴써야 하는 것은 맞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의 세입 구조로는 정부가 안정적인 나라살림을 꾸려가긴 힘들다.
이에 따라 고소득층은 세금을 더 많이 부담하고 중산층도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하는 방식으로 세금부담을 다소 늘려야 한다. 유럽처럼 소득의 30~40%를 세금으로 떼자는 것이 아니다. 각 계층의 근로자와 기업들이 세금을 조금씩 더 내 모든 국민이 어느 정도 평균적인 생활수준을 유지하게 하고 아직 재정 뒷받침이 필요한 사회기반시설도 늘려나가야 한다. 납세는 현실적으로 가장 큰 애국이다.
증세는 정권의 명운을 좌우하는 매우 어려운 선택이다. 그러면 여야 모두 머리를 맞대고 그 해결책을 진지하게 논의해 대타협을 이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선거에서 표도 중요하지만, 정말 꼭 해야 할 정책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추진해야 한다.
납세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혈세’라는 말도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한다. 국민이 낸 세금은 아껴써야 하지만 적절한 곳에 투명하게 쓰인다면 그 세금은 금은보다 소중하다.
안타깝게도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정국을 휘몰아치는 가운데 내년 총선도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증세론은 얘기할 수 있을지 안타깝다. 조세개혁을 위한 동력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재정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세수는 부족하고 쓸 곳은 많다. 우리나라가 기축통화 국가가 아닌 이상 돈을 마꾸 찍어낼 수는 없다. 이에 따라 세수를 늘려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노력은 필수적이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정부와 정치권은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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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650호(201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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