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 성 훈 연구위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최근 들어, 주요국의 정부, 국제기구 및 정책연구자들 사이에서 국제조세회피에 대한 대응방안을 찾고 이를 정책으로 실현하는 문제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 OECD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BEPS (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세원잠식 및 소득이전)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어떤 투자행위 또는 경제행위가 조세회피행위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는 상당히 까다롭지만, 이 글에서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조세회피행위를 정의하고 최근의 정책 논의 동향 및 연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통상적으로, 조세회피행위란, 납세자가 세금을 줄이기 위해 선택한 행위가 형식적으로 법적 규정을 준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한 세금 감소가 법의 취지나 국민들의 도덕적 정서와 잘 맞지 않는 경우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세회피 행위는 국제적으로 여러 나라에 걸쳐 거래하거나 투자하는 경우에 빈번히 일어난다. 나라마다 다르고 복잡한 세법과 조세조약에서 맹점을 찾아 이용하면 법의 원래 취지와는 다르게 세금을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국적기업이나 투자펀드는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사업 및 투자 행위를 벌이기 때문에 국제조세회피를 시도할 기회를 더 많이 갖는다. 이전가격 조작, 조세조약 남용, 조세회피처 소득 유보, 거주지 과세이연 등이 대표적인 국제조세회피의 유형이다.
애플, 구글, 스타벅스와 같은 다국적기업이 적극적으로 세무 전략을 이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들은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정치권, 언론,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 여론이 의회에서의 진상조사 또는 과세관청의 세무조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를 통해 애플과 구글은 “Double Irish with Dutch Sandwich”라는 세무 전략을 이용하여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납세의무가 없는 회사를 설립하고 이 회사에 이익을 유보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스타벅스는 커피 원두나 투자금을 중개하는 자회사로 하여금 원두 가격과 이자율을 시장에서와 다르게 설정하여 국제적으로 세금을 줄여온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와 관련된 사례를 보면, 미국계 투자펀드인 론스타는 서울에 소재한 업무용 빌딩에 투자하여 부동산 양도소득을 얻으면서, 미국에 있는 펀드가 벨기에 자회사를 경유하여 우리나라의 부동산 회사에 투자하도록 하여, 소득의 종류를 양도소득에서 배당소득으로 전환하고 소득의 송금 대상도 미국 법인에서 벨기에 법인으로 바꿔서 우리나라에서 내야 하는 세금을 회피하였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에 투자하면서도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직접 투자한 것이 아니라 버뮤다, 룩셈부르크, 벨기에를 차례로 경유하여 간접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세금을 적극적으로 줄여왔다.
한편 최근 미국계 부품소재 기업과 프랑스계 에너지 기업도 우리나라에 투자하면서 적극적으로 세금을 줄여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들의 조세회피 행위는 전형적인 조세조약 남용에 해당하는데, 본사에서 우리나라의 관계회사로 바로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헝가리 또는 영국과 같은 나라에 회사를 설립하고 이를 경유하여 투자함으로써 경유국과 우리나라 사이의 조세조약을 이용하여 우리나라에서의 세금 부담을 줄여온 것이다.
조세조약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대응 방안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조세조약 남용에 대한 대응 방안은 법적 근거를 어디에 두느냐(국내법 또는 조세조약), 특정 국가, 소득, 또는 거래를 대상으로 하느냐(개별적 대응 또는 일반적 대응) 등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내법에 근거를 둔 일반적 대응에는 일반회피방지규정(General Anti- Avoidance Rule; GAAR)이 있고, 조세조약에 근거를 둔 일반적 대응에는 조세조약상의 주목적 심사 조항(Main Purpose Test; MPT)이 있다. 한편 국내법에 근거한 개별적 대응에는 비거주자 원천징수 특례 제도가 있고, 조세조약에 근거한 개별적 대응에는 조세조약상의 혜택 제한 조항(Limitation of Benefits; LOB)이 있다.
최근 OECD는 국제조세회피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나라 정부들 사이의 협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개별적인 국제조세회피 유형에 대해 대응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의 한 OECD 보고서는 조세조약 남용에 대응하기 위해 OECD Model 조세조약에 혜택 제한 조항 및 주목적 심사 조항을 추가하고 이를 기준으로 개별 국가의 실제 조세조약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이 OECD 보고서는 배당소득 및 부동산 주식 거래로 발생한 양도소득에 대해 조세조약 혜택(낮은 제한세율 적용)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저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세금 최소화 투자 경로를 네트워크 분석 기법을 활용하여 분석한 결과, 영국, 스위스, 헝가리 등이 주요 경유국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OECD에서 권고하는 조약 개정안을 참고하여 이들 나라와의 조약을 개정하여 조약 남용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체약국이나 소득의 종류에 따라 조세조약상의 제한세율이 다양하게 정해지고, 이러한 세율의 차이에 의해 조세조약 남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제한세율을 일정한 범위 안에서 통일하여 세율의 차이를 줄이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약을 개정하는 것은 국가 간의 외교적인 작업이어서 현실에서 조약을 개정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조약 개정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우리 과세당국도 주요 경유국과의 거래를 집중적으로 점검하여 국제조세회피 행위를 방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편 OECD에서는 BEPS 프로젝트를 통해 조세조약 남용뿐 아니라, 조세회피처 소득 유보 및 은닉, 이전가격 조작, 이자공제 남용, 고정사업장 회피 등의 조세회피행위에 대해서도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세회피처에 설립한 중간 법인에 소득을 유보하여 거주국 과세를 회피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피지배외국법인 (Controlled Foreign Corporations; CFC) 관련 세제를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국적기업이 관계회사와의 거래에서 가격을 조작하여 저세율국가로 소득을 이전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이전가격 관련 정보를 주요국 정부에서 공동으로 문서화하여 함께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OECD에서의 논의를 참고하여 우리나라의 대응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부와 납세자, 그리고 전문가 사이의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여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는 대응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