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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1950]
아빠, 가족회의 한번 엽시다!

박 병 률(경향신문 기자)

난리도 이런 난리는 없었을 테다. 개정안 발표 뒤 여론에 못이겨 일주일만에 뜯어고친 법이었다. 1년 뒤 막상 시행하고보니 또 시끄러워 졌다. 보름만에 다시 손댔다. 이미 법적용이 된 사람까지 소급해 ‘없던 일’로 해줬다. 그러면 완벽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촘촘히 들여다보니 ‘세정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면세자가 너무 많아졌고, 슈퍼리치의 세금부담은 줄었다. 이래저래 중산층 쥐어짜기만 됐다. 2014년 귀속소득에 대한 연말정산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네버 엔딩 스토리’다.
도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보자. 2014년 소득분에 대한 연말정산안이 첫 공개된 것은 2013년 8월8일이었다. 이 개정안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첫 세법개정안으로 5년간의 세정철학이 담겼다고 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3년 세법개정안 발표를 하루 앞두고 가진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그동안 세법개정안은 그해 그해 세법개정을 담았지만, 이번은 (박근혜 정부 임기인) 5년간 중장기적 조세정책 방향을 정해놓고 거기에 따라 세법을 개정한 것”이라며 “조세구조, 조세부담 적정성, 과세기반 확충 등을 두루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은 증세를 염두해두고 만든 사상 첫 세법개정안이기도 했다. 역대 세법개정은 소비확충이나 경기부양, 과세투명화 등을 위해 세금을 깎아주는 감세가 기조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 세법에 대해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증세’가 아니라고 했다. 내는 세금은 늘어나는데 증세는 아니란다. 과연 어떤 묘수가 있었을까.
2013년 세법개정안의 핵심은 공제제도 변경이었다. 주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꿨다. 그러면 고소득자일 수록 공제가 줄어들어 내는 세금이 많아진다고 했다. 서민은 세액공제폭을 확대해 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기재부는 이를 “묘수”라고 불렀다.
사고는 예상치 못한 곳에 터졌다. 세금이 오르는 사람들이 ‘상위 30%이상’이라고 했는데 이 기준이 ‘연봉 3450만원’이었다. 납세자들은 “현실적으로 3450만원이 무슨 고소득자냐”며 분노했다. 가뜩이나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세금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것”이라고 말해 국민심사가 뒤틀린 상황이었다. 대통령까지 나서 진화에 나섰고, ‘연봉 5500만원’부터 세금이 증가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5500만원은 중위소득의 150%가 되는 지점으로 국제적인 중산층 기준 중 최고 상위구간이다.
우여곡절끝에 개정안은 연말에 통과됐다. 이듬해인 2014년은 조용히 지나갔다. 문제가 된 것은 2014년 소득에 대한 연말정산을 하는 올해였다. 지난 1월 2014년 소득분에 대한 연말정산이 시작되고 실제 연말정산 내역을 받아보자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연말정산때 토해내는 돈이 늘어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잇달았기 때문이다. 연봉 7000만원 이상 소득자들도 “정부 주장보다 더 많이 올랐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정부가 2년전 파동을 겪으면서 “연봉 5500만원 이하에서 납부세액이 늘어난 경우는 극소수”라고 설명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실제 정산해보니 연봉 2500만~4000만원 구간에서 납세자 절반은 세금이 올랐다. 절반은 내렸지만 내린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세금이 오른 절반은 “속았다”며 거칠게 항의했다. 어떤 측면에서는 내린 사람의 세금까지 덤터기 쓴 꼴이 됐다. 이 주머니에서 빼 저 주머니로 옮긴 셈이다. 세금이 오르기 올랐는데 오른 이유를 납득하기도 어려웠다. 1인 가구도 올랐고 3인 이상 가구도 올랐다. 2인가구라도 교육비나 의료비를 많이 쓴 가정은 공제가 또 줄었다. 뭔지 모르지만 뒤죽박죽이었다. 정부는 “납세 평균치는 틀리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그것으로 여론을 무마시키기는 어려웠다. 정부는 부랴부랴 또다시 손을 댔다. 싱글들과 3인이상 아이가 있는 가구의 세금이 줄어드는 쪽으로 보완책을 냈다.
세법개정안 보완책은 4월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법이 통과되고 재환급까지 이뤄져 모든 파문이 종료될려면 7월은 되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근로소득자 중 사업소득 등이 있는 사람에 대한 소득신고는 6월말까지 연기됐다. 사상 처음으로 걷어들인 연말정산을 되돌려줘야하는 국세청만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다. 자칫 차세대 국세행정시스템 ‘홈택스’가 오류라도 나게 되면 겉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또 뒷말이 나온다. 연말정산을 한 근로소득자 1619만명 중 740만명(45.7%)이 세금을 전혀 내지 않게 됐다. 30%대까지 떨어졌던 면제자수가 다시 급증한 것이다. 면세자 확대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생긴 문제다. 긴 시간 정부가 추진해온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 엉망이됐다. 또 연봉 3억원이 넘는 소득자는 연봉 1억원대 소득자보다 세금인상률이 낮은 현상도 나타났다. 대기업 총수보다 대기업 부장의 세금 증가가 더 높았다.
끝이 없는 이번 연말정산 파문은 누구 책임일까. 연말정산을 기획한 기재부 세제실일까, 아니면 여론을 호도한 언론 책임일까. 2년간 연말정산 파동을 지켜본 소회로 보자면 ‘세정철학이 없던 청와대’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때 ‘증세 없는 복지’를 주창했다. 야당 수준의 복지는 펴되 증세는 하지 않는다게 목표였다. 돈은 필요한데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으니 모든게 어려워졌다. ‘증세불가’를 천명하는 순간 세율인상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세율을 손댈 수 없던 기재부는 묘수를 짜내야했고, 그게 공제제도 변경이었다. 공제제도는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복잡한 제도다. 통상 복잡한 제도 이면에는 꼼수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기재부가 필요한 것은 총액이었다. 1조원 가량이 필요했다. 이 정도의 돈을 걷으면서도 돈이 걷힌다는 느낌을 주지 않아야 했다. 결론적으로 기재부는 제꾀에 자신이 넘어갔다. 세정철학이 없는 청와대는 여론에 따라 춤을 줬다. 대국민 설득에 나서는 책임자도 없었다. ‘원칙’이 없었으니 애초에 국민설득은 어려웠을 지 모른다.
연말정산 파동이 남긴 휴유증은 크다. 세금에 대한 국민들 반감만 키웠다. 세금은 납세자의 의무이고, 세금을 낸 사람이 정당한 사회적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상식도 흔들렸다. 언제든 제도 변경을 통해 감세가 가능하고, 심지어 되돌릴 수 있다는 선례도 남겼다. 박근혜 정부 임기내에 다시는 세법을 손대기 어렵다는 자조섞인 말까지 세종관가에서는 나온다.
이런 혼란을 마무리할 수 있는 유일한 담당자는 청와대다. 우리 사회에 복지는 얼마나할 것인지, 돈이 필요하다면 증세를 할 것인지, 증세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터놓고 논의해야 한다. 최고 권력자가 직접 결정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공정한 판만 벌려주면 된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도 4월 임시국회 대표연설에서 이미 이런 구상을 밝혔다.
가정을 가장 홀로 책임지는 시대는 지났다. 회사가 어려워져 당장 다음달이면 봉급이 줄어드는 데 언제까지 쉬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조건 학원비와 반찬값 줄이라고만 하면 영문모르는 아내와 아이는 불만이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터놓고 아내와 자식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이 낫다. 아이는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리지 않다. 반찬값을 줄이든,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든 답은 나올 것이다. 대한민국 ‘가족회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회: 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