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상 훈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요즘 같아서는 어디 가서 세무사라고 명함도 못 내밀고 다니겠습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평소 안면이 있는 한 세무사가 며칠 전 기자에게 전화를 해 다짜고짜 하소연을 했다. 중견 세무법인을 운영하며 업계에서 나름 명성을 얻고 있는 이 세무사는 30분 넘게 목소리를 높이며 전화를 끊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부 비리 있는 세무사가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직군이라고 그런 ‘미꾸라지’가 없겠습니까. 마치 모든 세무사가 비리집단인 것처럼 몰아가니 억울하다는 겁니다. 이래가지고 어떤 납세자가 세무사를 믿고 일을 맡기겠습니까.”
이달 초 국세청이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비리 세무사 척결’ 방침을 내놓으면서 세무사계가 ‘침묵의 반발’을 하고 있다. 국세청은 1000만 원 이상 금품을 제공하면 곧바로 세무사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구체적인 방안보다 세무사들이 불편해 하는 부분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세무당국과 국민들의 시각이다. 한 세무사는 “일부 변호사들이 비리를 저지른다고 대법원장이나 검찰총장이 변호사회 회장을 불러 야단칠 수 있겠나. 잘못을 저지른 세무사가 있다면 규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하면 그만이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은 처사”라고 억울해 했다.
왜 하필이면 유독 세무사만 이렇게 두들겨 맞는 것일까. 누구 말대로 세무사가 만만해서 그런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최근 드러난 세무사들의 잇따른 뇌물 수수 및 알선 등 비리 때문이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를 파고들면 세무 분야 특유의 ‘불투명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정부만의 잘못도, 세무사만의 탓도 아니다. 안에서는 너무나 당연해서 느끼지 못할 뿐, 외부에서 보기엔 철저하게 폐쇄된 ‘그들만의 리그’에서 비롯된 문제다.
법조계와 비교해 보자. 뒤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재판 절차 자체는 투명하게 진행되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방청할 수 있다. 자신이 선임한 변호사가 법원 재판장에서 얼마나 나를 제대로 변론해 주는지 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아무리 전관예우가 남아 있고 브로커가 활동한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판결문은 당장 변호사와 검찰 모두로부터 반발을 사기 십상이다. 적어도 ‘절차적 투명성’은 갖춰졌다는 뜻이다.
법조계와 비교하면 국세청의 세무행정과 세무사들의 활동은 훨씬 불투명하다. 납세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하는 국세기본법에 근거한 것이라지만 세금을 내야 하는 납세자 입장에서는 핑계에 가깝다. 과거에 비해 많이 투명해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업자들은 도대체 내 세금이 어떻게 매겨지는지 충분한 근거를 갖고 판단하기 어렵다. 세금이 매겨지는 과정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내가 고용한 세무사가 도대체 세무관서에서 어떻게 설명을 하고 공무원들을 상대하는지 알 길이 없다. 사후증명이나 세무조사를 받는 사업자라면 이러한 의심이 더 크다. 납세자보호담당관 도입, 조사과장 면담제 시행 등으로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국세행정에 ‘토’를 달기란 웬만한 용기를 갖지 않고서는 쉽지 않다. 로펌과 자체 법무조직으로 무장한 대기업은 그래도 사정이 낫다. 매출 수십∼수백억 원 수준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자는 상황이 다르다. ‘괜히 함부로 이의를 제기했다가 당국에 찍히지 않을까’ 겁내는 납세자들이 여전히 많다.
이러다 보니 이러한 납세자들의 약한 고리를 악용하는 일부 세무사들이 좀처럼 줄지 않는다. 납세자들이 접근을 어려워하는 틈을 타 “돈만 조금 찔러 주면 세금을 깎아줄 수 있다”며 유혹하는 세무사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세무사들을 역으로 악용하는 납세자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세금을 조금이라도 덜 내기 위해 세무사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다 보니, 고객이 제시한 목표를 어떻게든 달성해야 하는 세무사로서는 향응 접대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도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같은 세무비리를 바라보는 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기본적으로 언론에서 보도되는 각종 세무비리의 주인공들의 면면만 봐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강남의 대형 성형외과, 국내 굴지의 대기업,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연예인 등이 그들이다. 매달 에누리 없이 월급에서 소득세를 원천징수해 10원의 세금도 빼먹을 수 없는 서민 입장에서는 ‘있는 놈들이 더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 정도면 세무당국과 세무사계는 모두 엄중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일반인들에게 이러한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와 업계 모두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네 탓 공방’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누구보다 최근 세무 비리 엄단 방침을 밝힌 국세청과 기획재정부가 자유롭지 않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1억 원 이상 세금 탈루에 가담한 세무 대리인 74명 중 38명이 징계를 받지 않았다. 비리를 저지른 세무사 앞에서 당국부터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한 것이다. 일부 비리 세무대리인은 국세청 소속 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돈을 준 세무사의 숫자만큼 돈을 받은 세무 공무원이 있을 터인데, 비리 세무사를 엄단하겠다는 목소리와 비교해 비리 공무원을 처벌하겠다는 의지는 찾기 힘든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세무사 역시 마찬가지다. 한달이 머다 하고 각종 세무사 비리 사건이 뉴스를 장식하는데도 그 흔한 자정대회 한번 열리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벤트성 행사’는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한편에서는 ‘그 정도 비리로는 심각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무뎌진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일부 세무사들의 분탕질로 치부하기에는 비리가 너무 잦은 게 문제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국세청 OB 세무사들의 전관예우가 문제다”, “세무사 시험 출신 세무사들이 물을 흐리고 있다”는 식의 편가르기 식 마타도어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모습이 외부로 드러날수록 국민들의 시선은 점점 더 따가워 진다.
세무 비리는 결국 ‘불편한 진실’을 양지 위로 끌어 올려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세무 공무원만의 문제도, 세무사만의 문제도 아니다. 어느 한 쪽만 엄단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세무 비리의 핵심은 세무 공무원과 세무사의 어두운 커넥션에 있다. 국가 세무행정의 양 축인 세무공무원과 세무사가 손을 잡고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법조계에서 대두된 전관예우 근절 문제를 세무업계에서도 진지하게 다뤄볼 필요가 있다. 비리를 저지른 세무사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기 전에 세무사회가 먼저 벌을 내리고 퇴출시키는 과감한 조치가 단행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신뢰 회복이다.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징세 환경이 좀처럼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세수 확보를 위한 세무사들의 노력과 헌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세금을 빼 주겠다고 납세자를 현혹하는 세무사는 업계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세무사계의 자정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세무사들은 탄탄한 능력과 노력으로 무장한 당찬 실력파였다. 세무사들이 작성한 기장은 첫 페이지만 봐도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 세무 비리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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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656호(2015.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