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수영이 영국왕립지학협회의 회원이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여사가 1897년까지 조선을 네 차례 방문하고 나서 조선이 세계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하고 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을 읽고 나서 쓴 시 ‘거대한 뿌리’(4.19후의 혼란상황에 실망하고 있던 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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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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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고
노래한 일이 있는데...
나는 때때로 나를, 내 인생을 뒤 돌아보게 됩니다. 내게도 쨍쨍 울리는 무엇이 있었는가? 내가 삶을 잘 살고 있는가? 많은 이들이 인생의 가치를 ‘신뢰받는 인간, 존중 받는 인간’ 이 되는 것이라고 말을 하는데 과연 나는 거기에 부합하게 살고 있는가?
나는 세무사임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세무사의 길에 들어서게 만든 세무공무원이던 때에 시월유신이 시작되고 또 끝이 났습니다. 30대 청춘을 몽땅 거기에 바쳤습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시월유신을 민주화를 후퇴 시켰다고 비하하고 산업혁명은 누가 해도 했을 것으로 폄하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국민총화를 이루어 수출대국으로의 성공, 8.3긴급조치로 기업을 회생시킨 일, 중화학공업의 기틀을 만들어 지속적 산업발전이 가능하게 했던 일이며 1,2차 오일쇼크를 견뎌낸 일, 이러한 일들을 일사분란하게 총화단결로 만들어 냈으니 말입니다.
그러한 과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세수부족을 보충하기 위해서 연초에는 조상징수를 하러 기업체를 찾아다니며 구걸 세정을 하기도 했고, 선진세제로 세상의 주목을 끌고 있는 부가가치세시행의 담당자로서 내가 근무하던 동안에 해 냈습니다.
18회로 세무사를 개업하여 올해로 34년이 꽉 차 가고 있으니까 짧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막 세무조정제도가 생긴 초창기였고, 내 인생의 장년기로서 팔팔하던 때이었으니 모든 게 자신만만했었지요.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세무사를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믿습니다. 내 인생이 곧 세무사이니 직업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요.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납세자들에게 납세편의를 제공함과 동시에 납세의식을 고취시키고 또 그들의 권익을 지켜주는 일은 내가 자부심과 보람을 가지게 하는 힘의 원천이며 우리 세무사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게 하필 그때뿐일 리가 있나요 나만의 일일 리도 없지요,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세무사라면 모두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 이따금 의뢰인의 비리에 연루되어 비난의 가운데 서는 분이 있는데 그런 이는 자기의 인생에 흠집을 낼 뿐만 아니라, 사슴의 눈을 닮은 1만1천 세무사들에게 흙탕물을 뒤집어 쓰게 하는 것이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업 환경이 많이 바뀌어 세무사가 1,300명에서 1만1천 명으로, 기장료가 7만원, 10만원 많으면 20만원을 받았는데 직원 봉급이 그 정도였으니까 지금과는 세무사의 사업 환경이 많이 바뀌었지요. 그때는 기장이나 조정을 필요로 하는 납세자의 수가 지금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만 그만큼 세무사 수가 적었으므로 할만 했었지요. 지금은 컴퓨터로 모든 게 해결되지만 그 때는 주산으로, 수기로 장부를 했으니까 애로가 상당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매월 10일, 또 법정 신고 일에는 세무서마다 납세자와 세무사사무소 직원들로 인산인해 였습니다. 또 세무사 사무실은 세무서마다 뛰어 다니는 것도 애로였지요.
언젠가 아침 TV에서 망둥어들이 갯지렁이 한 마리를 두고 다투는 걸 봤습니다. 그 역동적인 생존경쟁의 현장을 보면서 나도 삶의 활력을 얻곤 합니다. 치열한 삶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고 눈이 부시던 지요. 그런 속에서도 망둥어는 계속해서 번창하고 성장합니다. 어찌 망둥어 뿐 이겠습니까? 모든 살아있는 것은 동물이건 식물이건 경쟁을 하면서 성장하고 번창 하는 것이지요. 세무사도 마찬가지지요.
서로 간에 경쟁하고 다툼이 일어나 애로가 생깁니다. 지금 회원게시판에 보면 거래처 때문에 서로 다투기도 하고 비난 하는 것도 보게 됩니다. 그런 것 역시 세무사법이 생기고 첫 번째 다음에 두 번째 회원이 등록하는 날 이래로 있어온 일이지요. 다만 우리 세무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욕심을 자제하여 세무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자긍심을 잃지 말아야합니다. 스스로 자존을 높이면 세무사 업무에 대한 긍지도 생길 것입니다. 적은 수입으로 만족하는 방법이 있더라구요. 소욕지족이라는 명약 말입니다.
진주만 포격이 있던 해에 태어나 숱한 우여곡절과 간난의 세월을 뛰어넘었습니다. 독재의 시대에서 민주의 시대로, 풀죽을 먹다가 살빼기 전쟁 시대로, 농경시대에서 산업화의 시대로, “조선 놈이 그렇지 뭐”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하던 우리가 세계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존의시대로, 최빈국에서 10위권의 부국으로, 정보화시대의 총아인 IT기술의 선진국으로, K-pop과 한류에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시대로, 7위의 무역대국으로, 소로 길에서 사통팔달의 고속도로의 시대로의 상전벽해를 이루어 낸 변혁의 주역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뜁니다.
격동의 시대에 만고풍상을 이겨 내면서 조국근대화의 각 길목에서 내 힘을 보탰습니다. 재정의 맑은 혈액을 공급함으로써 도약하는 우리의 조국에 활기를 불어 넣어 만들어 냈으니 대견하고 멋진 일을 했습니다.
빵빵해서 맵시가 나던 옷이 헐렁해서 아주 볼품이 없습니다. 팽팽하고 윤기가 흐르던 얼굴엔 주름이 가득합니다. 그래도 내가 세무사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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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659호(201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