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사회에서 의미 있는 합의가 이뤄졌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이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 행위에 대해 각국의 조세제도를 정비하는 등 공동 대응키로 한 것이다.
최종 방안은 11월 터키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의 승인을 받아 최종 확정된다.
국제 조세제도의 허점 및 국가 간 세법 차이를 이용해 세금을 내지 않는 다국적기업들로부터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셈이다. 이르면 2017년부터 실행이 가능할 전망이다.
그동안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는 각국의 골치 아픈 문제였다.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스타벅스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다국적 기업의 상당수가 리스트에 올라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조세회피처에 세운 여러 개의 회사를 동원하거나 각국이 이중과세를 방지하기 위해 맺은 조세 조약의 맹점을 악용해 왔다.
예를 들어 법인세가 높은 A 국가에서 얻은 이익을 실제 활동은 하지 않지만 법인세가 낮은 B 국가로 옮기는 방법 등으로 세금을 탈루해왔다. 또 다른 방법은 고정 사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소득이 발생한 나라에서 세금을 내지 않는 방법이다.
금융이나 정보기술(IT) 관련 다국적 기업들의 상당수가 이 경우에 속한다. A 국가에서 얻은 이익을 조세회피처에 세운 자회사로 특허료와 경영자문료 등의 명목으로 이전시키면 국내에서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세금을 납부해야 할 이익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 행위는 심각한 수준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기준 해외 법인 9,532곳 가운데 절반이 넘는 4,752개 기업이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이 가운데 매출이 1조원 이상인 기업도 15곳이다. 구글의 경우 매년 국내에서 애플리케이션 판매로 약 1조 5,000여 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아닌 아일랜드에 서버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세금을 회피해왔다.
더욱이 국내에 진출한 해외기업 대부분은 공시나 외부감사 의무가 없는 유한회사 형태다. 정확한 수익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우리 정부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 행위에 대해 별다른 규제를 하지 못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 등의 해외 오픈마켓에서 판매하는 앱에 10%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
그러나 아직 법인세에 대한 논의는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각국은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세금을 걷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왔다.
영국의 경우 지난해 말 다국적 기업이 영국 밖으로 옮기는 수익의 25%를 징수하는 내용의 법안을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국제적인 공조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국가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2013년 G20 회의 이후 60여 개국 정부와 기업 대표, 시민단체들과 함께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을 찾아왔다.
그 결과물이 이번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합의가 이뤄진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보고서다.
조세회피 대상 다국적 기업의 대부분이 구글, 애플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이라는 점에서 일명 ‘구글세’ 도입 방안으로 불린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OECD에서는 거의 100년 만에 국제 조세규정의 틀이 바뀐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번 합의를 토대로 각국은 국내법을 개정하고 조세 조약 변경에 나서게 된다.
OECD 규제안에는 국가 간 세금정책 차이나 조세조약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업이 낮은 세율 국가의 자회사로 수익을 이전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OECD는 조세규정 변경으로 한해 세수가 2,500억 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저성장 기조에다 만성적인 세수 부족 문제에 시달렸던 각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로 인한 글로벌 법인 세수 감소분은 매년 전 세계 법인 세수의 4~10%
(2014년 기준 1,000억~2,4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적인 규제 공조가 이뤄지게 되면 각국의 세원 확보에 상당히 기여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번 공동 합의가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대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각국이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로서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만 합의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각국이 일관된 기준을 도입하기 어렵고 실행을 강제할 법적 근거도 미진해 결국 미봉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외신들은 G20 정상회의에서 OECD 규제안이 승인되면 국가별로 입법 절차에 착수하게 되는데 이것이 가능할지, 다국적 기업들이 또 다른 구멍을 찾아 피하려 할 때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규제안으로 상당수의 기업이 영업구조를 바꾸고 자금조달 방식을 재검토할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정할 때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세 회피 대상 다국적 기업들이 많은 미국이 기업들의 로비로 법안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공동 합의로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한 첫 단추는 일단 끼웠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가야 하는 길이다. 각국의 오랜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위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무사신문 제662호(2015.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