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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1943]
[기고] 세무조사 일원화, 이번만큼은

김   용   훈
파이낸셜 뉴스 기자

 

모르긴 해도, 지금은 아마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앞선 세대에 고등학교를 다닌 어지간한 사람들은 모두 다 한번은 겪어봤음직한 바로 ‘소지품 검사' 이야기다.

일찍 담배를 배운 조숙한 녀석들은 선생님의 눈을 피해 증거물을 숨기기 위해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하나 책 잡힐 것이 없더라도 마음은 괜히 불안하기만 했다.

도끼눈을 뜨고 몽둥이를 든 선생님을 옆에 두고 책가방을 거꾸로 들어 탈탈 터는 그 행위, 그 자체에 굴욕감을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 소지해선 안 될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적인 부담이 컸다.
하필 소지품 검사를 실시한 날, 한 조숙한 녀석이 담배를 피우다 걸려 그 학급의 학생 모두가 또 다시 책가방을 털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수업시간의 절반이 날아갔다. 

 

벌써 십수년이 지난 고교시절의 유쾌하지 않은 추억을 굳이 들추는 이유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무조사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지난 2013년 지방세법이 개정됐고, 올해부터 전국 226개 시·군·구가 세무조사권을 갖게 됐다.
국세인 법인세 이외 나머지 법인지방소득세를 각 기업이 사업장 소재 지자체에 일일이 신고·납부하도록 바뀌면서 국세청의 고유권한이던 세무조사권을 지자체도 갖게 된 것이다.

문제는 한 번만 받으면 끝났던 세무조사를 여러 차례 받게 된 기업들이다.

실제 경북 영천의 한 자동차부품 업체는 이미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았는데도, 경상북도의 세무조사를 또 받기도 했다. 영천시까지 나선다면 세 번이다. 사업장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한 대기업의 경우 많게는 일곱 번의 조사를 받아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

기업들 입장에선 "세무조사만 받다가 날 새울 판”이라는 하소연을 쏟아낼 법도 하다.

판교에 본사를, 대전과 창원에 각각 사업장을 두고 있는 한 중견기업의 대표이사는 "세무조사로 괴롭히지 않아도 충분히 힘든 마당에 굳이 지자체까지 나서 기업을 옥죈다고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될 게 뭐가 있느냐”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앞서 지방세법을 바꿀 때에는 지자체의 자주 세원과 과세권을 확충해 지방재정의 기반을 탄탄하게 하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선 "법인지방소득세도 기업이 돈을 벌어야 낼 것 아니냐”며 답답해했다. "중국 시장에 대한 전망이 어둡고, 올 12월에는 미국금리 인상까지 앞두고 있어 경영전략을 짜는데 온 힘을 쏟아도 부족한 마당에 몇 번씩 세무조사를 받도록 하면 어쩌란 말이냐”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도 이들 기업들의 사정에 공감한다는 점이다. 앞서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는 세무조사권한을 국세청으로 단일화하는 세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지방세법 재개정안으로 구체화했고, 지난 7월 세무조사권과 과세표준 결정권을

국세청으로 단일화하는 재개정안이 지난 7월 국회안전행정위원회에 제출했다.
또 행정자치부는 내년 말까지 세무조사를 유예해 달라는 공문을 지자체에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세법개정안의 국회 통과다. 행자부의 공문도 구속력이 없는 권고일 뿐이다. 어서 지방세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내년부턴 지자체의 세무조사권 행사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지난달 29일 재계의 요청으로 직접 여야 대표들을 만나 세법개정안 통과를 당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세법개정안 통과를 장담하긴 이르다는 전망도 나온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과거와 같이 ‘표’를 의식한다면 반대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 2013년 지방세법 개정 당시에도 그랬다. 기재부는 오늘과 같은 부작용을 우려해 반대했지만,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지자체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게다가 이번에도 지자체들은 "당초 지자체에 조세권과 세무조사권을 준 취지와 어긋난다”며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지자체가 국세청과 함께 세무조사를 하면 세정이 더 투명해지는 효과도 있다”는 논리도 보탰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본말이 전도된다면 곤란하다. 소지품 검사의 목적이 면학분위기 조성이라면 수업시간을 빼앗으면 안되는 것하고 똑같다.

지방재정의 기반을 탄탄하게 하려면 우선 세금을 내는 기업들이 장사를 잘해야 한다. 세무조사에 쫓겨 돈을 벌지 못한다면 낼 세금도 사라진다.

아무리 세정이 더 투명해지더라도 지방재정은 탄탄해질 수 없다는 말이다. 모쪼록 이번만큼은 국회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랄 뿐이다.
 

※위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조회: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