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원 기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이영진님이 올해 최소한 납부해야할 소득세액은 1억5천640만원입니다. 최소 납부 필요세액에 이의가 있거나 문의 사항이 있을 경우 국세청 홈페이지나 관할 세무서에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이런 세금 고지서를 받을 날이 올까. 아니 이런 안내 메시지가 내 스마트폰으로 올 수도 있을까.
(종합)소득세와 법인세, 부가가치세와 같은 세목들은 대표적인 신고세목이다. 세정 당국이 내야 할 세금을 알려주는 세목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신고서를 작성해 얼마를 내야하는지 정하고 스스로 납부를 해야 하는 세목이다.
그런데 최근 국세청의 움직임을 보면 이런 전형적인 신고세목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납세자가 마땅히 알아서 채워야 할 신고세목의 신고서 내역 상당수를 국가가 채워주거나, 최근 몇 년간의 세금 납부 흐름을 분석해 착오납부 또는 탈세 가능성이 높은 부문을 지적해주는가 하면, 아예 아직 신고 납부 기간이 시작되려면 시간이 남았는데 현재 상태에서 이대로 세금신고를 하게 되면 얼마의 세금을 부담하거나 얼마를 환급받게 될 지를 미리 알려주기도 한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선 어떤 조치가 필요하고, 어떤 절세팁이 있는지 친절하게 안내도 한다.
지난해 임환수 국세청장이 부임하고 난 뒤 임 청장은 납세자에 대한 사후 검증보다 사전 성실신고 안내를 강화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것이 그냥 신고 안내를 강화한 수준이 아니다. 앞서 예로 든 것처럼 미리 예측을 하고, 납부 세액을 알려주고, 절세 방법까지 코치해준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다. 국세청 주요 세목 국과장들은 한결같이 “과거 신고세 기반이었던 세목도 국가가 내용과 금액을 고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큰 흐름”이라고 전하고 있다.
국가가 개인이, 또는 소규모 사업자가 얼마를 벌고 얼마를 내야 하는지 어떻게 알게 됐을까. 이게 가능해진 것은 사실 국세청의 분석 기법이 갑자기 뛰어나졌다던가, 예측 및 분석 인력을 새롭게 보강해서가 아니다. 신용카드 사용과 현금영수증 제도의 도입, 그리고 결정적으로 전자세금계산서를 도입하면서 개인의 소득과 기업 매출의 근간이 되는 가장 중요한 거래 기록들이 전산화됐기 때문이다.
이런 거래 기록들이 전산화되면서 데이터의 축적이 가능해졌다. 사실 국세청은 과거에도 사전 세금 안내를 했었다. 날짜와 신고 정보만 있는 게 아니라 납부 정보도 포함돼있었다. 하지만 사업자들의 반발만 불러일으킬 뿐 세금 징수에 별다른 도움은 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납세액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납세자들이 수긍하는데 추정에 의한 정보를 보냈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이다. 당시엔 매출 등 실적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추정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런 이유때문에 2012년부터는 이런 방식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2011년 전자세금계산서가 도입된 이후 사업자들의 매출에 대한 상세한 통계 집계가 가능해졌다. 이후 지난해까지 4년간의 신고실적이 축적돼 빅데이터가 되면서 업종별 기업별로 정확한 세금 안내가 가능해졌다. 즉 기존 현금영수증, 신용카드 사용액 등에 대한 전산 자료가 장기간 축적됐고 여기에 전자세금계산서가 더해지면서 마지막 퍼즐이 맞춰진 셈이 됐다는 것이다.
빅데이터는 세금 안내 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실제 세수를 늘리는 데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게 국세청 내부의 분석.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올 9월말 현재 누계 국세 수입은 166조5천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조원 증가했다. 지난해 이 시기 70.5%에 그쳤던 세수 진도율은 올해엔 77.2%를 기록하고 있다. 작년엔 당초 국세수입예산안 216조5천억원에 비해 11조원이 부족한 205조5천억이 걷혔다. 하지만 올해는 이미 9월까지 작년 실적보다 14조원이 더 걷혔고 이 추세대로라면 연말까지는 지난해보다 16조원 가량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올해 세입예 215조7천억원 대비 5조원 내지 6조원 가량 초과 세수 실적으로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수가 증가한 이유는 소득세의 경우 부동산 및 주식 거래량의 증가,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 조정의 영향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징세 방식의 변화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즉 납세자들의 자발적인 신고와 납부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국세청이 납부해야 할 세액을 어느 정도 알려주고 신고 내역도 상당 부분 채워주면서 신고와 납부의 편리성이 개선됐다는 점이다. 국세청이 업종별, 소득원별로 법인세나 부가세, 종합소득세 등을 납부해야 하는 사업자 등에게 빅데이터를 분석한 정보를 통해 납부세액을 알려주는게 세금 징수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빅데이터의 진짜 무서운 점은 이 방식이 과세당국의 힘을 더 키웠다는 점이다. 이제 국세청은 어떤 개인사업자나 법인의 과거 3∼4년 간의 실적 데이터, 납부 세액 데이터 등을 분석, 올해 내야 할 세금을 예측해낸다. 관행적으로 잘못 해 왔던 항목도 지적을 하고, 탈세 가능성이 높은 항목에 대해선 지적도 서슴치 않는다.
국세청이 당신이 번 용돈 정도의 적은 금액까지 다 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얼마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사실은 친절하게, 하지만 동시에 매우 엄중하게 알려주는 날이 올 것이다.
‘국세청은 당신이 얼마의 세금을 내야할지 다 알고 있습니다.’
※위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무사신문 제665호(2015.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