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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2040]
<기고>누더기 세법 개정 이제 멈출때

"대표가 없다면 세금도 없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세법이 왜 조세법률주의에 근거해야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표현이다. 1775~1783년 미국 개척자들이 영국과 독립전쟁을 치렀을 당시 13개 식민지 개척민들은 이같은 슬로건을 기치로 내걸었다.
당시 미국민은 영국에 설탕세, 인지세 등을 내고 있었지만 스스로 국회의원을 선출할 권한은 없었다. 이 같은 불만은 미국 독립을 촉발했다.


인류사에서 혁명은 대대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세금 문제와 관련이 깊었다. 프랑스 대혁명도 그랬다.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미국 독립전쟁을 지원하고자 과도한 군사비를 지출했고 이로 인해 프랑스 정부는 재정난에 봉착했다.


이후 성직자와 귀족에게도 과세를 하겠다는 ‘임시지조'를 선언했지만 기득권 저항에 부딪혔고, 오히려 부르주아 등 제3신분에게 부과되는 세금을 늘렸다. 이후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입법의회 구성→1792년 공화정 선포는 세금이 얼마나 혁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잘 알려준 일련의 이벤트였다.


역사는 늘 교훈을 남긴다. 우리 헌법도 38조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어떤 행정 행위보다도 조세는 법에 근거하라는 역사적 교훈이다. 물론 오늘날 현대 사회는 300여 년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법률 근거 없이 세법 개정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는 돈다.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는 법에 따라 세법이 개정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세법이 누구 손에 의해 어떻게 바뀌는지 제대로 모른다. 사회는 다원화 양극화되고 이익 관계자들은 더욱 많아졌고 국민 모두를 대변할 수 있는 세제 부담과 혜택은 적기 때문이다. 정부가 매년 세법개정안을 발의하고 국회는 매년 이를 고치면서 내거는 명분은 시대 흐름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대표가 없다면 세금도 없다”는 시대가 아니라 "대표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세금(Unknown taxation with representation)” 이 존재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13년 말 소득세법 개정안이다. 당시 정부는 비과세 감면 축소를 한다는 목적으로 근로소득세를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크게 바꾸었다. 하지만 후폭풍이 불었다.

 

유리 지갑인 근로자만 부담이 가중된다는 불만이 팽배한 것이다. 13월의 세금, 꼼수 증세라는 비아냥거림이 인터넷에서 떠돌았고 국회는 뒤늦은 2015년 1월 개편을 단행해 환급액을 확대했다.

 

하지만 급조된 개정은 또 다른 부작용을 불렀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년 귀속분(2014년 연말정산) 기준으로 직장인 과세대상은 1635만9770명, 면세자는 530만264명 수준이었다. 면세자 비중이 약 32.4%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4년 귀속분(2015년 연말정산분)에서는 과세대상이 1668만7079명으로 이 중 면세자가 48.1%인 802만3836명에 달했다. 2014년만해도 직장인 3명 중 1명이 세금을 내지 않았다면, 작년에는 2명 중 1명이나 세금을 안냈다는 뜻이다. 특히 면세자 중 일부는 고액 연봉자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총급여인 과세대상근로소득가 1억원을 초과하는 직장인 중 결정세액이 없는 자만 1441명에 달했다.


우리 헌법 11조는 조세평등주의 근간을 명시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이 헌법 조항은 평등한 것은 평등하게, 불평등한 것은 불평등하게 취급하고 세법의 입법과정이나 집행과정에서 조세 정의를 실현해야한다는 조세평등주의로 이어진다.
국회의원과 공무원은 세법 입법시 그 부담이 국민들 사이에 공평하게 배분되

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조세법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모든 국민을 평등하게 취급해야한다는 것이 조세평등주의의 핵심이다. 1776년 아담 스미스가 조세 제1원칙으로 삼은 것도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 제13조에서 규정한 것도 조세평등주의다.


하지만 소득세법 개정안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 현실은 이 원칙을 위배하는 일이 잦다. 세법은 국민 공감대하에서 개정돼야하는데 너무 자주 개정을 하다 보니 문제점이 무엇인지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등을 국민들이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특히 세법이 어렵고 자주 개정된다는 점을 간파한 일부 국회의원들은 조세특례제한법을 남발한다.
지역구가 제주인 A의원은 말(馬) 산업 육성과 제주 첨단과학기술단지 등에 대한 과세특례 연장을 내용으로 한 조세특례제한법을 발의하고 강원 출신인 B의원은 평창 동계 올림픽 지원을 위한 지방세특례제한법, 조세특례제한법 등을 발의했다.


조세특례제한법은 1조에 "조세의 감면 또는 중과 등 조세특례와 이의 제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여 과세의 공평을 기하고 조세정책을 효율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과도한 세제 혜택 부여를 막아 조세 부담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누군가에 대한 혜택은 누군가에 대한 부담으로 이뤄진다는 것은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선진국들은 이런 행위를 제한하고 안정적인 입법을 위해 법안에 종류별로 딱지를 붙이는 것을 우리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 하원은 상임위가 법안 심사 결과를 보고하면 하원 내 의사국이 법안을 크게 4종류로 분류한다. 세입·세출을 요하는 공적인 법안은 유니언 의안목록(Union Calendar), 예산 증액 등이 필요 없는 공적인 법안은 하우스 의안목록(House Calendar)이라는 딱지를 붙이다. 또 국민 전체가 아닌 특정 개인 또는 일부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법안은 사법안 목록(Private Calendar)으로 분류하고, 정당 간 논쟁을 벌일 여지가 없는 법안은 교정 의안목록(Corrections Calendar)으로 정리하는 식이다. 세입 세출이 필요한 법안인지, 사적 이익을 위한 법안인지를 명시하는 것만으로도 그 법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세법 개정안 시즌이 찾아오고 있다. 조만간 정부는 세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국회는 9~12월 정기국회에 이를 수정할 것이다. 누더기 세법 개정만큼은 이제 멈출 때가 아닐까 한다.

 

세무사신문 제680호(2016.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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