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년 전 뉴욕특파원으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맨해튼에서 세무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중학교 시절 친구를 만났다. 요즘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자 그는“A기업의 탈세를 돕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가 탈세를 돕다니, 기자를 앞에 두고 이게 무슨 말인가?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차근차근 설명을 들어보니 그는‘절세를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30년 넘게 미국 생활을 한 친구의 서툰 한국어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절세는 세법이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합법적으로 세금을 줄이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에 비해 탈세란 고의로 사실을 왜곡하는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세금 부담을 줄이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친구의 한국어 탓만 할 일이 아니다. 절세와 탈세는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내가 하면 절세, 남이 하면 탈세'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실 기자도 절세와 탈세 사이에서 고민한 적이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아파트를 증여받으면 증여세가 9000만원이나 부과된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절세 방법을 찾아봤다. 주변 지인들은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고, 소위 전문가들은 이런저런 유혹을 하기도 했다. 처리비용으로 500만원을 내면 증여세를 절반으로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탈세가 아닌 절세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기자는 지금이나 그 때나 세법에 무지한 터라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증여받은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1억원에 가까운 세금을 모두 냈다.
만약 그 때 증여세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그러나 절세인지 탈세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평생 찝찝한 기분을 안고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는 점에서 거액의 세금을 낸 것에 조금의 후회도 없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최근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불리기와 관련한 잇단 보도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홍만표 전 검사장은 가족 회사를 통해 오피스텔 123채를 보유하고 15억원을 탈세한 혐의를 받았고, 진경준 검사장은 친구인 김정주 넥슨 창업주로부터 넥슨 비상장 주식 4억여원 어치를 공짜로 받아 120억원 수익을 올려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어 터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세(稅) 테크’는 단연 백미로 꼽을 수 있다.
우 수석의 처가 일가는 고(故) 이상달 정강중기·건설 회장이 남긴 경기도 소재 골프장 기흥컨트리클럽을 상속할 때 SDNJ홀딩스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세웠다. 기흥컨트리클럽 운영사인 삼남개발은 이 회장이 작고한 지난 2008년 6월30일 이후 두 달 만에 이 회장이 보유한 삼남개발 주식 15만주(지분율 50%)를 SDNJ에 612억원에 매각했다. 우 수석의 장모 김장자 씨가 작고한 뒤 골프장 지분을 상속할 때는 부동산이 아니라 비상장주식으로 넘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부동산 가격이 뛰더라도 가치 변동이 거의 없는 비상장주식만 상속하면 되기 때문에 상속세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 수석과 그 가족들이 소유한 부동산투자회사 ㈜정강도 같은 구조다. 정강은 실물자산으로 토지와 건물, 부동산신탁, 미술품 등 81억원 규모 투자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향후 상속할 때가 되면 가치 변동이 크지 않은 비상장기업 주식만 상속하면 되기 때문에 상속세를 줄일 수 있다.
특히 SDNJ는 중소기업으로 등록돼 있어 법인세를 줄이는 효과도 보고 있다. 최대주주 주식 가치 할증평가도 지분율이 50%가 넘을 때 일반기업은 30% 할증하지만 중소기업은 할증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우 수석 처가 일가는 앞으로 상속을 받을 때 세제 혜택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상속자산 가치도 적게 평가되기 때문에 상속세도 적게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 수석 처가 일가는 또 상속받은 삼남개발 지분을 SDNJ에 매각할 때 이 페이퍼컴퍼니의 부채계정을 이용했다. SDNJ가 당장 돈을 지급하지 않고 공짜로 골프장 지분을 인수한 뒤 지분 인수대금을 천천히 갚아 나갈 외상대금이란 의미의 장기미지급금 계정에 잡아 놓는 방식이다.
특별취재팀이 이같은 내용을 보고하자 편집회의에선 한 바탕 격론이 벌어졌다. 우 수석의 사례가 탈세인지 절세인지를 둘러싸고 데스크들의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결국 전문가들에게 확인해보기로 했다. 돌아온 답변은“돈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일반적인 일”이라는 것이었다. 한 부동산세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법인세가 낮은 편이기 때문에 회사를 세워 세금을 내는 것은 거액의 부동산 투자자들이 적지 않게 쓰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설명처럼 우 수석의 세테크 기법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로버트 기요사키의‘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도 비슷한 방법이 나온다. 그는“기업은 개인이 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며“기업은 돈을 벌고 지출을 한 후에 남은 돈으로 세금을 낸다. 이것은 부자들이 사용하는 아주 흔한 절세 방법이다”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자동차에 들어가는 할부금, 보험료, 유지비도 회사 돈으로 낸다. 헬스클럽의 회원권 역시 그러하다. 대부분의 식사비는 비용 처리가 가능하다. 그 밖에도 많은 이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우 수석의 사례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실제로 우 수석의 페이퍼 컴퍼니 설립과 이로 인한 각종 세제 혜택은 불법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우 수석 본인이 억울함을 호소한 것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일부 자산가들이나 세무 전문가들은 우 수석과 관련해 쏟아지는 보도를 보면서 무지한 언론의 호들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1% 초저금리 시대에 조금이라도 더 돈을 모으기 위해 은행을 기웃거리면서도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대다수 국민은 고위 공직자의 기발한 세테크를 보며 허탈한 기분을 느낀다.
19세기 미국 대법관을 지낸 올리버 웬델 홈스는 “세금은 문명사회에 사는 대가”라며 납세정신을 강조한 바 있다. 최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우리나라 일부 법조인들이 절세와 탈세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어서 씁쓸하다.
세무사신문 681호(2016.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