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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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4540]
<기획>일제 강점 35년, 민족수난의 세금수탈史

1910년 국권피탈 이후 일제치하 35년 동안은 한민족의 정통성이 위협받았던 치욕의 세월이었다. 당시 일제가 저지른 수많은 만행들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지만 수탈을 위한 세금정책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올해 광복절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억압에서 벗어난 지 71주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조세제도 변천사에 대해 짚어보며 조국이 빛을 되찾은 광복(光復)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 1910년 ‘조선토지조사사업’에 의한 지세(地稅) 수입 증가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0년대 일제가 우리나라를 무단통치하며 거둬들인 세수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지세에 의한 수입이었다. 
일제는 1912년부터 토지소유권을 명확히 규정한다는 명분으로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고 1914년 ‘지세령’을 공포해 지세 수입을 거두기 시작했다. 
지세령이 공포되고 1918년 토지조사사업이 모두 마무리되면서 1920년에는 지세 수입이 1910년에 비해 2배 가량 증가했다. 당시 총 조세 수입 가운데 지세가 25% 정도의 비중을 차지했으며 일제의 조세수입은 연평균 15.9%라는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일제는 이렇게 확보된 지세 수입을 통해 총독부의 예산을 확충해 식민지 지배의 기반을 강화할 수 있었다.
때문에 많은 우리 농민들은 지주에게 유리한 기한부계약제 소작농 혹은 화전민으로 전락하거나 만주·연해주·일본 등지로 이주했다.

 

 

■ 주류세 등 불합리한 간접세 신설해 수탈

1920년대 이전까지 일본은 본국으로부터 보충금을 지원받아 우리나라에 대한 식민통치를 운영했다.
때문에 당시 조선총독부의 가장 큰 목표는 식민지 경비를 본국 정부의 보조금 없이 식민지 내에서 조달하는 재정독립이었다. 이를 위해 일본은 1920년대에 들어 새로운 세목들을 만들어 수탈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세금이 주세(酒稅)다. 한일 병합 이전 조선은 자가 제조에 의한 다양한 종류의 전통주들이 존재했고 많은 백성들이 이를 판매해 수익을 거뒀다. 당시 조선의 제조장 수는 30만여 개에 달했다.
이에 일본은 1907년 처음으로 주류를 세금원이라 규정하고 주세령을 도입했다. 술 제조에 세금을 붙인 것이다. 일제는 새로 도입한 주세로 인해 엄청난 세금을 거둬들였다. 우리나라에서 거둔 전체 세금 중 약 30%가 주세로 채워졌다. 이렇게 주세가 세수에 큰 비중을 차지하자 일본은 1916년 세금징수를 보다 편하게 하기위해 주류를 탁주, 양주, 소주 3종류로 획일화시키고 1917년에는 자가 양조를 전면 금지하고 주류면허제를 도입해 허가받은 사람만이 주류를 제조토록 했다.

주세령에 의한 막대한 조세수입은 일제의 식민지 내 재정독립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조선의 전통주는 모두 말살 돼 30만 여개가 넘던 제조장은 1930년에 이르러는 1개만 남게 됐고, 그 결과 주류 제조로 생업을 꾸리던 당시 백성들은 일본에 과도한 세금만 물다 결국 삶의 터전을 잃게 됐다.
이밖에도 일본은 주세와 같은 다양한 간접세를 신설해 세금 수탈을 이어갔다. 1914년 ‘연초세령’을 제정해 담배 제배를 하는 국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다 1912년 연초를 국가가 독점해서 생산, 판매하겠다는 ‘연초전매령’을 공포해 수입을 독점했다. 1919년에는 사탕소비세를 신설해 사탕제조장으로부터 사탕, 당밀 또는 당수가 반출될 때마다 세금을 거둬들였다. 또한 ‘사람이 많은 동네에 살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시가지세’란 불합리한 세금도 만들어 수탈했다. ‘시가지세’는 집단 호수 천호 이상 시가, 즉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1000가구 이상 사는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세금을 더 매긴 제도다. 

 

 

■ 전시 재정 확보위한 ‘전시비상조세체계’ 실행

1937년 이후는 중일전쟁과 2차 세계대전 등 전쟁 발발기로 일제는 전쟁자금 마련을 위한 집약적인 수탈을 시작했다. 일제는 전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내며 전시재정수요충족을 위해 ‘전시비상조세체계’라는 기형적 정책을 수립해 막대한 세금을 거뒀다.
일제 강점 초기인 1910∼1919년의 지세를 중심으로 한 조세수입은 연평균 15.9% 증가했으며 1920년대 주류세, 사탕소비세 등 간접세를 대폭 신설하는 등 세제개편을 단행하며 조세 증가속도가 더욱 빨라져 1936년 조세수입은 7천 539만엔에 달했다. 이어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전시비상조세체계’를 시행하며 1937년 이후 조세수입 증가율은 연 평균 32.5%에 이르러 1943년도에의 조세수입은 3억6천870만 엔을 기록했다. 여기에 연초와 홍삼과 같이 국가가 독점적으로 생산과 판매를 해 거둔 수입인 전매익금까지 포함하면  5억3천620만엔의 조세수입이 일어났다.
약 900만 엔 수준의 조세수입이 일어나 1910년과 비교할 때 전쟁시기인 1940년대 우리나라를 통해 일본이 거둔 조세수입은 59배 정도가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전시비상조세체계로 인한 조세부담률의 경우에는 우리나라는 1941년 11%에서 1943년에는 16.1%로 5%포인트 이상 높아진 반면 일본의 경우는 14.3%에서 15.7%로 1.4%포인트만 상승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부담이 높아졌다.

1인당 조세부담액을 보면 1910년에는 0.81엔이었으나 1943년에는 24.1엔에 달해 29.7배로 증가했다.
이처럼 일본은 일제강점기 기간 동안 식민지 경영을 위한 재원조달과 침략전쟁에 필요한 전비(戰費) 조달을 위한 세수증징에 관심을 두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키 위해 일본은 지속적으로 세목의 신설과 폐지를 진행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조세체계는 복잡해졌으며 조세의 공평성과 효율성이 떨어지게 돼 조세제도의 근대화도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왜곡은 국민들의 세제에 대한 불신을 키워 납세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의식을 싹틔우게 했다

이에 대해 서해대학교 세무·물류학과 정덕주 교수는 "일제 강점기에 세수 증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세목 신설과 폐지가 빈번하게 이뤄져 조세체계가 복잡해졌고 대중 과세적인 간접세 위주의 조세구조를 형성해 조세의 공평성이나 효율성을 저해했으며 이로 인한 조세도덕의 퇴폐라는 유산을 남기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제의 강점이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인지 아니면 단순한 수탈인지에 관한 논란이 있지만 조세구조에 관한 한 그 영향은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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