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대 호
MTN 기자
6,000억 원. 재산 총액이 아니라 ‘탈루한 세액’만 이 정도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도대체 재산이 얼마나 많아야 탈루한 세금만 6,000억 원에 달하는 것일까?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 중 최대 성과물은 총수 일가의 조세포탈 혐의가 될 전망이다.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2%에 대한 증여세 탈루액만 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해외 비상장 회사여서 탈루세액 추정이 정확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검찰은 “재벌가 증여세 탈세 가운데 최대”라며 은근히 수사 내용을 자랑하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과거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2%를 장녀 신영자 씨와 셋째 부인인 서미경 씨, 그리고 막내딸 신유미 씨에게 증여할 당시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여러 차례 경유하는 수법으로 증여세를 탈루했다고 한다. 국내 계열사였다면 이 같은 방식의 탈세가 쉽지 않았겠지만, 롯데홀딩스는 일본에 있는 비상장회사이다 보니 이런 눈가림이 가능했다. 지난해 경영권 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일본 계열사 지배구조도 제대로 드러난 적이 없던 롯데그룹이다.
검찰은 ‘신격호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증언도 확보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나는 절세를 지시한 것”이라며 탈세 혐의를 부인했지만, 그의 지위와 탈세금액, 수법 등을 봤을 때 위법성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는 “증여세는 주식을 받은 사람이 내는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변호인이 준비해 준 멘트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는 자신의 책임을 가족들에게 돌리는 무책임한 논리가 돼버렸다. 검찰이 확보했다는 진술처럼 ‘신격호 회장의 지시’에 의한 탈세였다면 그는 두 번 비겁해진다. ‘증여세를 내야할 사람들’이 어떤 변명을 할지도 궁금하다. 신영자 씨의 경우 탈세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서미경 씨는 그렇지 않다. 함께 증여세를 탈세한 딸 신유미 씨와 함께 일본에 머물며 검찰의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급기야 검찰은 그녀의 여권에 대해 무효조치를 내리며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현지에서 불법체류자가 돼 강제 추방될 수 있다. 70년대 톱스타에서 재벌 총수 내연녀로, 그리고 이제는 조세포탈 범법자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됐다.
탈세를 몰랐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워낙 재산이 많아 계열사에서 급여로 얼마를 받는지, 금고 속에 얼마를 넣어뒀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총수 일가다. 계열사별 복잡한 지분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번 탈세 혐의에 대해 그들이 몰랐던 일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들은 주식을 준 사람 즉, 신격호 총괄회장과 진실게임을 벌여야 하는 구도가 된다.
‘조 단위’ 재산을 증여하면서도 세금을 한 푼 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천문학적인 탈세에 혀만 차고 끝내기에는 세금에 대한 가진 자들의 인식이 너무나 개탄스럽다. 규모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가진 자들의 탈세를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어도 세금은 끝까지 피하려는 안간힘이다.
최근에는 양도소득세 20억 원을 체납한 김 모 씨의 고급 아파트에서 故백남준 씨의 비디오 아트와 사진작가 김중만 씨의 작품 등 예술품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압류를 피하기 위해 안경 지갑에 수표 4억 원 규모를 숨긴 사례, 세탁기 안에 10억 원 상당의 채권 서류를 숨긴 체납자 등도 있었다.
국세청이 올해 상반기 고액 체납자를 대상으로 받아낸 세금만 8,615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21.3% 늘었다. 이대로 가면 지난해 체납세 확보 실적 1조 5,863억 원을을 크게 뛰어넘을 전망이다. 5억 원 넘는 세금을 1년 이상 내지 않은 체납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2,226명, 체납세액은 3조 7,832억 원에 달한다.
한편에서는 소득이 적어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서민들을 두고 ‘공평과세’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교과서같은 말로 공평과세의 출발은 ‘넓은 세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빨리 세금을 걷어야 한다고들 지적한다.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48%에 달한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며 말이다.
하지만 이들 근로소득세 면세자들은 1인 가구 기준으로 연소득 1,500만 원, 4인 가구 기준으로 연소득이 3,230만 원 이하인 사람들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저소득 근로자가 많다는 뜻이요, 정부가 그동안 각종 비과세, 세금감면 조치를 통해 지원을 해 온 계층이라는 뜻이다. 연간 국세감면액을 봐도 2013년 33.8조원, 2014년 34.3조원, 2015년 35.9조원 등으로 해마다 증가해왔다. 그리고 그 혜택은 약 60%가 중산층 등 서민에게 돌아갔다고 한다(이 비율은 비과세, 감면 제도 실효성 및 부자감세 비판과 맞물리며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말로는 매년 비과세, 감면 제도를 축소하고 세원을 확대해야 한다면서도 실상은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서민들에게 세제 지원을 지속하거나 확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근로소득세 면세자를 줄이고 세원을 넓혀 공평과세를 실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속되고 있다. 이쯤에서 다시 서론을 상기해보자. 일부이긴 하나 수천억 원을 탈세하는 재벌과 수억, 수십억 원을 체납하는 자산가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유리지갑을 열어야 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오버랩 해보자. 국민들이 과연 대한민국 ‘공평과세’의 정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연봉 2,000만∼3,000만 원 근로자에게 세금 몇 만 원을 더 걷으라고 해야 한다면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재벌도, 자산가도, 세정당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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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684호(2016.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