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맥주시장은 대표적 독과점 시장이다. 지난 80년 동안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 양사는 국내 맥주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했다. 여기에는 국내 맥주에 대한 주류세, 유통구조, 각종 규제 등이 작용했다. 하지만 2011년 이후 수입맥주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꾸준히 확대되고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맥주산업의 대기업 독과점 문제를 지적하며 중소업체가 자체 생산한 하우스 맥주의 유통구조 확대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국내 맥주산업 구조의 지각변동을 예상케 한다. 본지는 우리나라 맥주시장이 독과점 구조에서 최근 경쟁체제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에는 어떤 주류 세제와 규제 등이 작용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는 한국 맥주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 2012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한국 특파원이 한국 맥주에 대해 남긴 평이다. 다소 굴욕적인 영국기자의 한마디는 많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국내 맥주 제조업체들은 발끈했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은 제조업체의 생각과는 반대로 영국 기자의 이 같은 평이 “틀린 말이 아니다”라고 옹호했다. 특히 국내에 수입된 해외 맥주 혹은 해외여행을 통해 현지 맥주를 접한 소비자들은 “국내맥주는 수입맥주에 비해 탄산만 강할 뿐 밍밍하며 풍미가 없다”고 평가했다.
‘맛없는 맥주’라는 평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독과점 구조를 띤 국내 맥주산업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더 넓게는 이런 구조를 고착화 시킨 한국의 주류세제와 각종 규제와도 얽혀있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국내 시장독과점의 기준은 시장점유율이 ▲1개사 50% 이상이거나 ▲상위 3개사의 합계가 75% 이상일 때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맥주 시장에서 2015년 기준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 3사의 시장점유율은 91.5%에 달한다. 맥주 시장은 전형적인 독과점 구조며 이는 우리나의 맥주산업이 시작된 1930년대 이후 현재까지 약 80년간 지속돼 왔다.
품질 향상에 게을렀던 국내 맥주 기업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올해 4월 발표한 ‘시장구조조사’에 따르면 국내 맥주시장을 선도한 대기업 제조업체들이 독과점 구조 속에서 많은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얻으면서도 더 나은 품질의 맥주를 만들기 위한 기업의 연구개발(R&D)에는 소홀했음이 나타난다.
매출액 대비 R&D투자 규모를 의미하는 ‘평균 R&D 투자비율’을 보면, 독과점구조 유지 산업의 경우 2.2%를 기록해 광업·제조업 전체 평균(2.4%)보다 낮다. 그 중 맥주산업은 0.41%로 특히 낮은 수치를 기록한다. 반면 영업이익률을 알아볼 수 있는 순부가가치비율은 독과점 구조 산업의 평균이 33.4%이고 광업·제조업 전체 평균이 27.3%이지만 맥주산업은 64.9%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결국 맥주제조기업들의 순부가가치비율은 전체 평균보다 2배 이상 높고, 연구개발투자비율은 6분의 1 정도에 그친 것이다. 풍요 속에 나타난 개발 빈곤, 이는 곧 국내 맥주가 ‘맛없는 맥주’라는 굴욕적 평가를 받은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규제의 벽에 부딪힌 하우스 맥주
왜 한국 맥주시장은 독과점 구조가 깨지지 않고 있을까? 이는 우리나라의 주세 제도와 주류제조 시설 및 유통망에 대한 규제 등과 얽혀있다. 세제와 규제들이 비교적 대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며 중소맥주제조업체는 시장진입에 어려움을 겪다가 사라지게 됐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05년 112개의 중소제조업체는 2014년 51개로 급격히 줄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류세는 출고가에 72%를 세금으로 책정하는 종가제를 적용한다. 때문에 ‘규모의 경제’에 의해 대량생산을 하는 대기업 맥주의 출고가는 소량 생산을 할 수밖에 없는 중소제조업체의 하우스 맥주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고 결국 현행 주세 제도에서 중소업체는 매출액은 현저히 낮으면서 맥주 한 병당 세금은 오히려 대기업에 비해 더 많이 물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중소업체가 생산량을 늘릴 수도 없다. 주류법 상 중소제조업체에 적용되는 세금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해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류법에 따르면 중소맥주제조업체는 발효조 25KL, 저장소 50KL 이하, 총 75KL까지만 소규모 사업자로 인정돼 리터당 최고 60%의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받는다. 단 1KL만 초과해도 대기업으로 인정돼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중소업체로서는 생산량을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없는 사면초가에 놓인 것이다. 이밖에도 종합주류도매상을 통해서만 맥주를 유통하도록 제한해 중소제조업체는 직접 유통망을 선정하거나 수퍼마켓·편의점 등 소매점 판매를 하지 못하도록 한 규제, 국세청이 맥주 가격신고를 심사하는 관행 등도 중소제조업체 ‘하우스 맥주’의 시장진입을 막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캔에 만원!
…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수입맥주
그런데 단단했던 국내 맥주시장의 독과점 장벽이 최근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이 구조에 균열을 일으킨 것은 수입맥주다. 2011년 한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계기로 유럽 맥주가 본격 수입됐다.
이를 계기로 그간 국내 대기업에서 출시한 라거맥주(저온 발효 맥주)만 마시던 소비자들이 에일(상온 발효 맥주), 흑맥주(맥아를 태워 발효시킨 맥주), 밀맥주 등 다양한 종류의 수입맥주를 맛보고 맥주에 대한 선호도가 바뀌며 수입맥주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가파르게 늘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수입량과 수입액은 총 17만919톤, 1억4천186만달러(우리나라 돈으로 약 1천600억원)에 달한다. 이는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전년도보다 수입량과 수입액이 각각 43%, 27% 늘어난 수치다. 이 여파로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 80%대의 매출 비중을 차지했던 국산맥주는 수입맥주에 밀려 2014년 70% 대로 하락했고, 2015년에는 급기야 50%대로 급락했다.
이 역시 주세 제도가 작용했다. 국산맥주의 경우 출고가(제조원가+판매관리비+이윤 등)의 72%가 세금으로 부과되지만 수입맥주는 수입가(수입신고가+관세)가 과세표준이 된다. 국세청은 고시를 통해 국산맥주와 수입맥주가 각각 출고가, 수입가 이하로 할인판매 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수입맥주는 수입신고 시 가격을 낮게 책정해 신고한 뒤 시중 판매가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으며 마케팅 관련 규제도 상대적으로 느슨해 묶음 할인판매나 경품행사 등 다양한 프로모션으로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4캔에 만원’에 판매되는 수입맥주 행사는 이 때문에 가능하다.
주류업 관계자는 "수입맥주의 시장점유율이 이제 10%에 육박해 국내 맥주시장은 독과점이 아닌 무한경쟁 단계로 접어들었다”며 "이제는 국산 맥주가 오히려 수입맥주에 비해 유통단계에서 다양한 가격 규제를 받는 등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맥주 독과점 붕괴
… 하우스 맥주의 조용한 반란
이처럼 한국 맥주시장의 독과점 구조는 수입시장 개방과 함께 차츰 깨지고 있다. 국내 대형 맥주제조업체들은 수입맥주에 대한 과세표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관할하는 기획재정부는 "수입맥주의 과세표준 조정 문제는 국제 분쟁으로 연결될 수 있어 민감하며 지난해 국민들의 반발도 컸던 만큼 제도를 바꿀 계획이 현재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4월 “소비자 후생을 떨구는 맥주시장을 겨냥해 독과점을 깰 경쟁 촉진시책을 마련한다”고 밝히고 지난 8월 맥주산업 시장분석 연구용역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분주하다. 이를 통해 현재의 종가제를 종량제(출고가가 아닌 알코올 도수와 양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방식)로 변경하고 국세청의 가격심사를 통한 가격통제 폐지, 슈퍼·편의점 등 소매점 판매 허용 등 하우스 맥주에 대한 규제 완화 방안이 적극적으로 논의된 만큼 향후 하우스 맥주의 성장도 긍정적으로 예측된다.
이런 기대감 속에 하우스 맥주는 조금씩 반등을 노리고 있다. 하우스 맥주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젊은 소비자층이다. 자신의 입맛에 딱 맞는 풍미를 지닌 맥주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어 서울 이태원이나 홍대 인근을 중심으로 여러 ‘하우스맥주펍’이 생기고 있다. 물론 아직 하우스 맥주는 국내 맥주시장에 0.5∼1% 정도의 점유율밖에 차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수년 내 점유율이 5% 이상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맥주업계 전문가들은 “수입맥주의 침공과 하우스 맥주의 성장으로 인해 맥주시장도 무한경쟁으로 돌입했다”며 “국내 대형 맥주업체들이 독과점 구조 속에서 자칫 제품개발보다는 마케팅과 유통 등 외부적 요인으로 시장을 선도하려 한다면 ‘소비자 입맛 경쟁’에서 수입맥주, 하우스 맥주에 밀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기업들이 제품 개발에 더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맛있는 맥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만 남았다”고 입을 모은다.
세무사신문 제686호(201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