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 근
전 부산지방세무사회장
옛말에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 하여 “한 치밖에 안 되는 칼로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 오늘날 인간사회에는 “한 치의 혀”로 사람을 무수히 죽이고 있다. 그야말로 “촌설살인(寸舌殺人)”의 시대다. “나이가 많으면 죽어야 한다.” 이 말은 재판도중 나이 많은 증인이 판사가 묻는 말뜻을 선뜻 알아듣지 못하자 그 증인을 향해 내뱉은 어느 판사의 말이다.
이 독설 때문에 온 세상이 뒤집히는 소동이 일어났다.
판사의 막말에 억장 무너져
언론에서도 신성한 재판정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을 모독한 판사의 처신에 비난을 쏟아냈다. 많은 사람들이 개탄하며 그 판사 옷을 벗겨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이 사건은 대법원 징계위원회에서 제 식구
감싸기로 견책이라는 가벼운 징계로 막을 내렸다.
필자가 이 무식한 판사의 언행에 분노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도 늙었다는 증거일까.
판사라면 으레 최고의 지성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인성이 이토록 쭉정이인 사람을 판사라 믿고 재판을 받는 우리 국민이 불쌍할 따름이다.
나이가 많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은 비단 그 판사만이 내뱉은 말일까.
얼마 전 한 언론조사기관에서 발표한 통계를 신문에서 보았다. 부모님이 몇 살까지 살았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에 관한 것이었다.
20대 젊은층 60%이상이 부모님이 67세까지 살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는 결과에 놀라웠다.
장수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평균수명이 80세를 넘겼고 곧 100세시대로 접어들고 있는데 세태가 이렇다면 나이 많은 노인들은 대체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대한민국은 1년에 노인 4,700명이 자살하는 국가이다. OECD가입국 가운데 노인자살 1위로 기록되고 있다.
젊은 사람이 미래의 꿈을 향해 살아간다면, 노인은 적은 것에도 만족하면서 미래보다 과거에 살고 있는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지나온 세월 속에 묻어난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소박한 희망으로 삶의 가치를 느끼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부모님이 아닌가.
필자는 40여년 노인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노인들을 지켜보고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오늘날 산업화된 경제사회에서 비생산적 소비주체라고만 생각해 노인들이 설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늙은 말(馬)이 길을 잘 안다는 속담이 있다. 지금의 노인은 평생을 가정과 국가사회를 위해 온갖 풍상을 겪고 살아왔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경험과 삶의 원리를 잘 알고 있어 우리가 배울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치의 혀’가 사회를 죽여
불가에서도 구업(口業)을 짓지 말라는 말이 있다. 구업은 입으로 범하는 죄업을 말한다. 거짓말, 이간질 하는 말, 악담하는 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성경 복음서에도 거짓말 하지 말라고 우리들을 가르치고 있다. 개인의 행복과 불행, 국가의 안전과 세계평화에 이르기 까지 이 모두가 촌설(寸舌)에서 좌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사물의 본질과 그 개념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서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외쳤다. 오늘날 실체 없는 “카더라 뉴스”에 편승하여 사람을 분별없이 죽이려는 일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한 치의 혓바닥으로 자신과 사회국가를 망가뜨리는 어리석은 짓을 삼가야 한다. 칼이 사람을 죽인다면 독설은 사회를 죽일 수 있다. 때로 칼보다 말이 무섭다.
희망과 용기를 주는 덕담으로 정을 나눠야 할 새해 벽두이다. 고운 말만 해도 부족한 때이다.
우리 사회가 서로 간 비수를 꽂는 막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행태에서 벗어나 모두가 칭찬과 격려와 같은 고운말을 통해 단합과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덕목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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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692호(2017.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