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폐수관리업체에서 일하는 A(37)씨는 최근 법원에 1억350만원을 납부하라는 날벼락 같은 통지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분식회계가 적발돼 상장 폐지된 회사의 주식투자자들이 낸 단체소송에 가담했던 A씨는 소송에 이겼지만, 피해배상액은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거액의 소송비용만 물게 됐다.
A씨의 사정은 이렇다. 2009년 4월 세 식구가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투자를 결심한 A씨는 재무구조가 제법 건실하다고 건네 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코어비트의 주식 2만주(약 5천770만원)를 사들였다.
하지만 코어비트가 2008년도 실적 처리에서 분식회계를 한 정황이 드러나 2010년 2월 코스닥 상장이 폐지되면서 A씨의 꿈은 산산조각이 됐다.
전·현직 임원들의 횡령 범죄를 감추기 위해 회사 재무제표를 허위로 꾸민 것이다. A씨가 보유한 코어비트 주식 2만주는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됐다.
A씨처럼 피해를 본 '개미투자자' 207명은 2011년 1월 분식회계에 가담하거나 책임이 있는 코어비트 경영진과 사외이사 등 11명을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1심은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표이사 3명과 사외이사 Y씨에게 분식회계로 인한 상장폐지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2심 판단은 1심과 조금 달랐다. 대표이사 3인의 책임은 그대로 인정했지만, 사외이사 Y씨는 책임이 없다고 봤다. 사외이사에 불과한 Y씨가 경영진이 일으킨 분식회계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비록 사외이사 한 명에 불과했지만, 투자자들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대표이사 3명은 손해를 배상할 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강남의 유명 병원장이었던 Y씨에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됐다.
이에 투자자들은 Y씨가 분식회계를 전후로 이사회에 꾸준히 참석한 점과 외부감사 회계법인에 평가 적정성에 관한 확인서를 제출한 점을 문제 삼아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이 이 주장을 받아들여 '사외이사도 분식회계로 인한 상장폐지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첫 판결을 내놓으면서 투자자들이 손해를 배상받을 길이 열리나 싶었지만, 다시 일이 꼬였다.
상황은 대법원이 사건을 내려보낸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반전됐다. 이번에는 Y씨가 분식회계 발생 이전인 2009년 1월에 코어비트 주식 72만2천주를 사들이면서 최대주주가 됐기 때문에 사외이사직을 상실했다는 새로운 주장을 제기했다.
자본시장법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사외이사가 최대주주가 된 경우 사외이사직을 당연히 상실하도록 규정한다.
파기환송심은 Y씨 주장을 인정해 상장폐지에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3월 파기환송심의 결론을 확정했다.
이후 투자자들은 재산이 없는 대표이사 3명에게 배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Y씨의 소송비용과 자신들의 변호사비용만 물게 될 처지에 놓였다.
이들을 도울 법률 구조장치도 없는 상태다. 법원 관계자는 "소송비용구조 신청은 소송 전에 법원에 신청하는 것으로 판결 확정 이후에 구조를 받을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