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10년 미루면 자녀들은 보험료 2~3배 내야
눈앞이익에 매여 公자금 상환·사회보험개혁 미적미적
"후세동의없이 권익 도둑질… 세대이기주의 심각" 지적
‘2047년 국민연금 고갈’. ‘2026년 사학연금 고갈’. ‘2020년 공무원연금 적자 9조3000억원’. ‘2020년 건강보험 지출 56조원’. ‘공적자금 만성 부채화’. 현 세대가 미래 세대에 보내는 우울한 재정보고서이다.
덜 내고, 많이 받는 현재의 사회보험 시스템이 다음 세대에는 지속될 수 없음을 알리는 ‘파산(破産) 보고서’이자, 현 세대 의짐을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부채 고지서’이다.
◆ 현세대 '흥청' 후세 '빚더미'
과연 현 세대는 얼마나 분수에 맞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고, 이에 따라 미래 세대는 어느 정도 쪼들려야 하는가. 전영준 인천대 교수의 연구 결과를 예로 들어보자.
2000년을 기점으로 대대적으로 연기금을 개혁하되 현재 살아있는 세대는 추가 부담을 지지 않고, 앞으로 태어날 미래세대가 모든 부담을 떠안는다고 가정했다. 그럴 경우 미래세대는 1인당 5739만원씩 평생 빚을 져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현재 50세인 현재 세대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낸 보험료보다 1인당 3102만원씩 더 받고, 40세인 사람들은 3105만원을 더 받는다. 다소 극단적인 가정이긴 하지만, 현 세대가 과도한 이득을 누리는 만큼 미래 세대가 부담을 진다는 얘기다.
지금처럼 연금개혁과 공적자금 상환이 미루어지면, 그 부담은 젊은 세대로 갈수록 더 커진다. 전영준 교수는 “만약 국민연금 개혁을 미루다 오는 2010년부터 한꺼번에 보험료를 조정해 균형을 맞추려면, 보험료를 두배 이상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보험료가 현재 9%에서 20%로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방식을 적용할 경우, 공무원연금은 168%, 사학연금 보험료는 207%나 올라야 한다.
건강보험 역시 개혁이 늦춰질 경우, 젊은 세대와 미래 세대가 지불할 보험료가 급상승할 전망이다. 김종면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만약 건강보험료를 올려 장기균형을 맞춘다고 가정할 경우, 2010년에 보험료를 조정하면 160%, 2020년에 조정하면 208%를 높여야 한다”고 분석했다.
◆ 현세대 이기주의 심해
‘세대 이기주의’의 대리인은 일단 현 정부와 국회다. 공적자금의 경우 한 해는 정부, 다음 해는 국회가 틀어 상환을 뒤로 미루고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의 고갈 시한 역시 빠르게 다가오고 있지만, 정부와 국회는 개혁안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당정은 지난해 국민연금의 보험료는 그대로 두고, 연금 급여만 월 평균소득의 60%에서 오는 2008년까지 연차적으로 50%로 낮추는 미온적인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이마저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현 세대가 할 일을 이런 식으로 뒤로 미룰 경우, 국가부채와 각종 사회부담금으로 우리의 미래 세대는 엄청난 짐을 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현상에 따라, 돈낼 사람(젊은층)은 적고 혜택받을 사람(노년층)은 많아지는 수급의 불일치가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미래 세대는 문제의 심각성을 모를 뿐만 아니라, 기존 세대에 눌려 자신들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정치적 통로가 막혀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경기대 박능후 교수는 “기성 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도권을 잡고 있기 때문에 세대간 갈등이 표면화 되고 있지 않다”며 미래세대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미래세대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KDI(한국개발연구원) 문형표 박사는 “기존 세대가 미래 세대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투표권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다음 세대의 권익을 도적질하고 있다”라며 “투표권 없는 미래 세대는 기존 세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놓은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모순)을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심각한 청년실업난도 근본적으로는 세대간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보고 있다. KDI 고영선 박사는 “어떻게든 정년을 유지하려는 기성 세대의 이해관계가 일자리를 새로 찾으려는 젊은 세대의 권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부모 또는 조부모 세대라고 볼 수 있는 현 세대가 역사의식을 갖고, 미래세대를 위한 배려와 절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 수석연구위원은 “우리 앞 세대들이 허리띠를 졸라매 살 만한 나라를 물려주었는데, 현 세대가 미래세대에 잔뜩 빚을 안겨주는 것은 심각한 도덕적 해이”라며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경제사회개혁은 현 세대가 완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