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 누구도 ‘간편한 것’보다 ‘불편한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너무나 당연한 명제에 현혹되어 간편납세제도가 간편이라는 어휘에 밀려 많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입될 위기에 놓여 있다.
가장 간편한 납세제도를 들면 인두세(人頭稅)이다. 그러나 그것은 납세능력을 무시하여 조세부담의 공평성에 위배되기 때문에 가장 원시적이고 후진적인 과세제도이다.
조세부담의 공평성을 가장 많이 고려하고 있는 미국의 세제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간편하지 않고 불편하고 복잡하다. 이처럼 간편성과 공평성은 양립하기 어려운 양자택일의 문제인데도 공평성에 대한 검토는 어디로 가고 간편성만 내세워 반쪽의 논리로 세제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영사업자와 근로소득자간의 세부담 불공평문제는 10여년간 내려온 고질적 문제로서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급한 과제이다.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중·장기 세제발전과제에서 집중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제와 양립할 수 없는 간편과세제도가 세를 얻고 있는 것은 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거나 알고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과거 정치권의 구미에 맞추어 과세특례자제도, 간이과세제도가 우리나라의 세제에 끼친 폐해를 10여년의 논란 끝에 겨우 치유하려고 하는 마당에 또 다시 그와 유사한 제도가 도입되려고 하는 것은 또 다시 우리나라 세제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는 상황이다. 간편납세제도를 조세전문가 입장에서 분석해 보았다.<편집자>
1. ‘간편하다’는 말의 현혹에도 실제 세제는 더 복잡해진다.
간편납세제도가 ‘간편’이라는 어휘의 이미지 덕으로 언뜻 그럴듯하지만 전문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렇지 않다. 현재 정부에서 제시한 간편납세제도 하에서도 여전히 감가상각비, 접대비, 기부금, 준비금·충당금, 기타 각종 경비, 세액계산, 세액공제 등 세무조정은 생략되지 않는다.
단순히 그 기준만 약간 완화했을 뿐 그들에 대한 세무조정 절차를 다 밟아야 한다. 문제는 간편납세제제도 하에서도 이러한 세무조정업무는 여전히 외부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처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간편납세제도라고 해서 세제를 ‘간편히’ ‘간편히’ 하다가 이들 업무를 아예 생략해 버린다면 그것은 아예 장부없이 세금내라는 것이 되어 공평과세는 실종되고 만다. 결국은 간편할 수도 없고 세무대리인의 도움이 없이는 집행이 어려운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하려는 논리는 미궁에 빠진다.
2. 재무제표 작성의 생략은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
간편납세제도를 택하면 대차대조표 등 재무제표의 제출을 면제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간편납세자에 대한 혜택도 유인책도 될 수 없다. 법인의 재무제표는 반드시 납세의무이행 때문에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주주 간 이익의 합리적인 배분계산, 경영관리, 신용금융, 4대보험료계산, 기타 경영상 자기 회사의 재산상태와 경영성과를 외부에 투명하게 전달하는데 필수적인 수단이다. 말하자면 간편납세제도가 아니라도 이러한 재무제표는 작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부에서 내세우고 있는 간편납세자에 대한 재무제표제출의무의 면제는 아무런 혜택이 될 수 없다. 괜히 납세자로 하여금 원천적으로 그러한 재무제표를 아예 작성하지 않아도 되는 듯한 기대감만 키워주어 납세자를 현혹하게 할 뿐이다. 무엇보다 우리사회의 각계각층이 투명사회를 지향하면서 조직의 활동을 정확히 기록하여 이들을 외부에 투명하게 표시하여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에도 정면으로 역행한다.
3. 간편납세제도는 중·대법인을 지향하는 소법인의 소망을 무시하고 있다.
소법인의 외형이 현재는 비록 5억, 10억 미만이라도 그들은 곧 50억, 100억 그 이상의 중·대법인으로의 확장발전을 전제로 경영을 한다.
그들에게는 소법인을 전제로 하고 있는 간편납세방식에 안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중·대기업의 장부기록과 증빙수집 능력을 배양하고 연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훈련을 생략하려는 간편납세제도에서 내세우고 있는 각종 혜택들은 당장 달콤한 사탕처럼 입맛을 당기지만 소기업이 튼튼한 중·대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필수적으로 얻어야 할 영양의 균형을 깨뜨려 결국은 소기업에게 득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
4. 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행정관리비는 증가할 수 밖에 없다.
간편납세제도는 현재의 납세제도에 별도의 간이과세제도를 만들어 납세자를 구분하여 관리하겠다는 것인데 현재의 과세체계를 2원화해 해야 하고 결국은 과세체계는 중첩구조가 되어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조세제도를 탁상에 앉아 2중구조이든 3중구조이든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을 일선현장에서 집행해야 하는 세무행정은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간편납세제도를 시행하려면 새로운 전산시스템과 관리인력이 추가되어야 하고 실제 일선에서 이들을 분리하여 2중으로 관리하려면 제도상 행정상 여러 가지 혼란으로 업무의 효율이 떨어지며 행정비용도 막대하게 소요될 수 밖에 없다.
간편납세제의 효익과 그에 따른 비용의 비교분석이 없이 간편이라는 감성적 분위기에 휩쓸려 세제의 실상은 오히려 더욱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잘못 가고 있는 것이다.
5. 세무대리인의 배척은 아웃소싱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하는 취지의 하나로 세무기장과 세무조정료의 생략 등으로 납세이행비용을 절감한다고 하는데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논리이다.
아무리 납세관계를 쉽고 편리하게 하더라도 영세자영사업자가 직접 장부기장과 세무조정을 할 수도 없다. 자체 내 인력으로 자기세무조정을 하려면 적어도 5년 이상 대리급의 법인경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인력을 보유하는데 따른 인건비를 소기업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세무대리인에게 대리시킨다면 자체 내에서 세무처리하는 비용보다 10%도 안되는 적은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다. 실제 세무대리인은 세금문제 뿐 아니라 일반 경영컨설팅까지도 서비스하기 때문에 그 비용은 훨씬 적으면서 많은 이득을 가져온다.
세무대리인에게 대리시키고 사업에만 전념하는 것이 훨씬 덕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간편납세제도의 도입이 사업자가 세금문제에서 벗어나 사업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정부의 논리는 오히려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매년 2,000~3,000여명의 세무대리인이 시장에 쏟아져 납세자는 저렴하고 유능한 세무대리인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은 아웃소싱시대이다. 전문적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외부의 전문가에 아웃소싱하는 것이 현대적 조직관리의 기법이다. 극심한 경쟁관계에 있더라도 전문분야에 있어서는 과감하게 적과도 동침하려는 것이 오늘의 경영환경이다. 간편납세제도에서 세무대리비용을 절감한다고 세무대리인을 납세자와 격리시키려는 의도는 최근의 기업경영의 환경변화와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세무대리인은 국세청 공무원이 할 일을 대리하기 때문에 세무행정비를 크게 줄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시에 과세자와 납세자간의 조정자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과세자와 납세자간의 첨예한 대립관계를 중화시키는 등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정책당국에서는 세무대리인을 적정하게 활용함으로써 납세자에게는 성실납세풍토를 조성하고 과세자입장에서는 행정비용을 절감하면서 효율적으로 납세자를 관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중요시하고 세무대리인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무사신문 제421호(2005.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