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은 '386급'인데 생각은 '펜티엄급'이다"
15일로 취임 1년을 맞는 이주성 국세청장에 대한 세무공무원들의 평가다.
말더듬는 고충을 고백해 화제가 됐던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을 빼면 이 청장은 참여정부의 고위관료 가운데 '가장 어눌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그래서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만큼 언론에 대한 노출도 꺼린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어린 시절 1년 가까이 심한 병을 앓았던 탓이라는 소리도 있다.
외부를 향한 말이 적었던 탓에 그가 지난해 3월 취임했을 때 곳곳에서 "이주성이 누구야"라는 물음표가 잇따랐다. 1년이 지난 지금, 국세청 주변에선 그에 대해 '생각의 빠르기와 용량이 말의 그것을 열배나 앞선다'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지난 1년간 이 청장은 남들이 하지 않거나, 허를 찌르는 생각으로 국세행정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임 직후에는 참여정부가 주력해온 혁신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는 참모들의 건의를 '거부하고' 그는 국세청의 제자리찾기를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혁신에만 진력하다보면 국세청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조사와 혁신'을 병행하는 '납득가능한 과세를 위한 예외없는 세무조사' 전략이다. "소신껏 세무조사를 하라. 하지만 부실과세는 절대 안된다"는 취임 일성도 같은 맥락이다.
국세청의 한 간부는 "이 청장은 정부내에 혁신이 최우선인 상황에서 역발상으로 세무조사를 최일선에 내세워 국세청을 개청 40년만에 본궤도에 올려놨다"고 말했다.
이 청장의 '제자리 찾기' 원칙은 조사대상 선정에도 적용됐다.
세계 11대 교역국인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외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이나 '한국에 진입한 외국기업'이나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국세청 간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4월 론스타를 비롯한 6개 외국계 펀드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인 것이 단적인 예다.
청년 공무원 시절, 이 청장은 발을 꼬고 앉거나 편안한 자세로 세무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사를 방해하려는 폭력배들의 습격에 대비, 항상 방어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국계 펀드에 대한 세무조사 때에도 이처럼 싸움을 걸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승부사' 근성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그는 올해부터 세무조사 방식을 정기조사에서 '표본조사' 방식으로 전환했다. 내외국계를 가리지 않고 표본조사를 벌여 탈루 혐의가 짙다고 드러나면 예외없이 지속적으로 심층조사를 벌일 수 있는 길을 제도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일각에선 그를 겨냥해 '국수주의자'라고 하지만 "해외에 나가있는 우리 기업이 받는 대우에 비하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서기관 1명만을 대동하고 각국을 돌아 '주요 10개국(G10) 국세청장 회의체'를 창설, 우리나라를 창설회원국 명단에 올렸다. 우리 기업이 외국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청장은 "G10 회원국이 된 것이 당장은 주목받지 못하겠지만 장기적으로 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누릴 수 있는 유무형의 혜택은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국세청의 올해 진로가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과세형평성'을 높이고 부동산 투기조사를 상시화하기 위해 고소득 전문직.자영업자의 탈루와 전면전을 선포하고, 부동산투기전담국까지 신설했지만 성공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에는 정부의 '8.31 부동산 대책'이 나오기까지 3개월간 부동산투기 조사에 진력하는 바람에 일손이 부족해 기업에 대한 정기조사를 제때 벌이지 못했던 일도 있었다.
세무공무원들의 평가대로 이 청장의 생각이 보통을 뛰어넘는 수준임을 인정한다 해도 인력과 조직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결국 '이주성의 생각'은 생각으로 끝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취임 2년차에 접어든 이 청장이 팔을 걷어붙이고 조만간 국세청 조직개편과 인력확충에 나서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